*마지막 공개 일기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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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랫동안 어떤 여자를 기다렸다. 누군가 내 재능과 자질 하나만을 보고 다가와주지는 않을까 - 키르헤르스 포이레나 또는 미도리처럼 - 그런 희망을 가지곤 했다. 언급했듯 나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간주해왔기에 가능했던 생각이다.

당연하다고 말해야할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 흔한 은근한 관심의 대상이 된 적도 없다. 대신 나는 성공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보이는 사람을 힘들게 물색하고, 데이트 계획을 치밀하게 짠 다음 몇달치 용돈을 몇 번의 만남에 쓰며 고생스레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연애는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예전 학창 시절 어쩌다 꽤 논다는 애들이랑 미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여자랑 안 자봤냐며 깔깔대며 비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 일들이 컴플렉스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어느 정도 극복했다 정도가 맞는 말이겠지.

어느 여자나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예쁜 여자가 외모나 능력 같은 것이 받혀주지 않는 남자를 공연히 바라볼 이유는 없다. 다만........ 아마 내 재능이 정말로 대단한 수준이었다면 분명 나를 먼저 알아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번 서글프다.

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는 - 그게 다는 아니었지만 - 그 작은 가능성에 대한 내 마지막 투자였다.

예전에 그 여자 블로거가 이곳을 방문한 일을 계기로 그런 기대가 증폭됐다. 그 사람은 기혼이었고 나에 대해 이성적인 관심을 기울인 것도 아니다만 또 그런 식으로 누군가 방문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기다렸지.

한 번은 미모의 여 선배가 이곳을 찾아와 날 설레게 만든 적도 있다만 딱 한 번 오고 다시는 오지 않더라. 나에 비해 레벨이 꽤 높은 사람인데 잠깐이나마 멍청한 기대를 했다는 게 서글프다.

어차피 이런 식이다. 내 친구들조차 이 공간에서 글을 쓰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뜬금 없는 처자에게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물론 세상에는 취향 독특한 여자 만나는 운 좋은 놈도 있겠지만 그걸 일반론으로 볼 수는 없다.

연애는 techne일 뿐이더라. 외모나 돈이 뒷받침되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물론 여자 특유의 그 섬세함, 이걸 만족시켜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다소 달라질 수 있다만...... 그렇게 해서 살 수 있는 호감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예민한 구석은 있지만 여자들 특유의 문화적 코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격을 제일 많이 본다고 말하지만 결국 첫 만남에서의 성격이란 '분위기'에 불과하다. 분위기는 성적인 매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성적인 매력은 제로 베이스에서 말만 잘한다고 뿜어져 나오지 않는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뭔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별 것 없는 내 인생에 차후에라도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성장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통계 속의 한 명일 뿐이다.

누군가와 완전히 소통할 수 있을까. 한 명이라도 온전한 내 편으로 살아주는 사람이 나올까.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거진 포기했고 부모에게는 자식된 도리라는 게 있으니 내 인생에서는 여자가 중요한데...... 현실이 이래서야 뭐.

선 봐서 외국 여자랑 결혼해도 잘 사는 사람도 있고 이경실처럼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해도 이혼하는 경우가 있으니 현 단계에선 모른다고 말해야하는 것 같긴 하다만...... 일단 허황된 기대는 접으려고 한다.

그게 이 블로그를 접는 이유 중 하나다. 부끄럽지만 이 공간 안에 있으면 그런 턱도 없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특별하지는 않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개운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배를 가를 용기는 없지만 남과 소통하는 데에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어떤 길을 가야할까. 현실은 인정하되 내 나름의 철학 아래에 새로운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그것은 무엇이 될런지. 그래도 이제 마지막 장을 쓰고자 한다. 일단 이틀 전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두자. 감정이 제거된 도구적 이성을 필두로 한 질주. 내면의 파시즘. 이쯤이 결론이 될까. 발전적 신열은 이제 끝났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이 것을 쓰는 행동 자체에 내 기분을 누그러뜨리는 힘이 있기에 나는 지금 이 시간이 가치 있다고 믿고 싶다.

  • 2009년 4월 30일, 열등한 스물 네 살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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