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나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새로운 단서를 찾았다. 작년 한 해 동안 양선생의 수업을 들은 하나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양선생이 김웅섭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아마 자기 아들 때문 일거야.”
“양선생님 아들?”
“왜? 양선생이 모태 쏠로라도 되는 줄 알았어?”
“그건 아니지만, 유부남일 줄은 몰랐는데.”
하나는 그런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키득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양선생이 왜 학원 강사가 됐는지 알아? 기술고시 공부하다가 여자 친구가 임신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거야. 25살에 먹고 살려고 학원 강사가 됐대. 아들이 지금 중학교 3학년인데 김웅섭이랑 닮은 구석이 많은가봐.”
“말도 안 돼. 정말 김웅섭 닮았으면 초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아버지한테 맞아 죽었을 걸?”
“자식 일이 자기 뜻대로 되나 뭐. 양선생님 아들은 공부 안한대. 애니메이션 전공한다고 매일 만화만 본다더라.”
“그림 잘 그리나보다.”
내 말을 들은 하나는 손사래를 쳤다.
“양선생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야.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이 있었다면 지원해줬겠지. 양선생님 지갑에 자기 아들이 그려준 그림 넣고 다니는 거 모르지? 양선생님 아들, 그림 겁나 못 그려.”
우리 나이 때는 누구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건 자유지만 그게 심해지면 흠이 된다. 이 나라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자각하는 것이 미덕이다.
나 역시 한때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세상을 놀라게 할 재능 같은 게 있진 않을까 궁금해 하곤 했다. 아쉽게도 나에게 천재적인 재능 같은 건 없었다. 우리가 정말 타고난 재능으로 별다른 고생 없이 삶을 누리며 살 가능성은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낮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숨겨진 재능이란 정말 노력해서 부딪혀본 적 없는 사람들의 도피처가 아닐까?
나는 김웅섭의 오만한 얼굴과 양선생의 메모를 떠올렸다. 김웅섭도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할까? 혹, 그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특별한 재능이 있을까?
나는 귀신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양선생의 쪽지에 적혀있던 말들을 곱씹었다. 사회시간의 김웅섭과 영어시간의 김웅섭, 그리고 수학시간의 김웅섭은 과연 같은 인간일까? 혹 내가 지각이 없는 사람이라서, 또는 우리 사회가 아직 창의적이고 독특한 사람을 포용할 만큼 성숙하지 않아서 ‘천재 김웅섭’이 소외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제일 먼저 주목한 것은 그의 시사적 지식이다. 나는 김웅섭이 고기능 자폐아처럼 인격적으로는 미성숙한 대신 일반인이 갖지 못한 놀라운 기억력이나 인지능력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웠다. 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김웅섭의 시사지식으로부터 그의 지적능력을 유추해보는 것이었다. 김웅섭이 수업 시간에 떠드는 내용들은 수준이 낮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수업내용 자체가 일반 내신에 국한되어 있기에 그가 가진 지식의 일면만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토요일 점심, 나는 얄팍한 지갑과 자존심을 털어 김웅섭과 동네 중국집에서 밥을 같이 먹었다. 김웅섭은 보기보다 식사 예절이 있는 사람이었다. 쩝쩝대는 소리를 낸다거나 음식을 입에 넣고 수다를 떨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생각만큼 밥맛 떨어지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솔직히 말해, 김웅섭의 밥 먹는 모습은 귀족적이라 할 만큼 섬세한 구석이 있었다. 냅킨을 들고 연신 입 꼬리를 찍어가며 입가에 짜장이 묻는 걸 경계하는 모습이라니.
짜장 한 그릇을 다 먹어갈 때쯤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넌 양선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
핸드폰을 꺼내 페이트 게임을 하던 김웅섭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김웅섭의 눈에는 놀라움과 환희의 빛이 애매하게 뒤섞여있었다.
“양선생?”
김웅섭의 얼굴에 슬그머니 두려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마치 어딘가에서 양선생이 엿듣고 있기라도 하는 양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이지. 암 그렇고말고.”
“양선생이 불쌍하다고? 왜?”
“왜냐하면 운동 따위에 시간을 쏟으니까. 어차피 죽어 사라질 육체에 그렇게까지 애정을 쏟는다는 게 얼마나 헛되냐? 너도 봤겠지? 그 천박한 근육덩어리를.”
응? 이건 무슨 소리지? 내가 자신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깨닫자 김웅섭의 목소리가 어느새 의기양양해지기 시작했다.
“양선생은 정신적으로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야. 나약한 정신력을 육체적 훈련을 통해 극복하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원히 정신적 빈곤을 극복할 수 없어. 혹시 개강 첫 날 내가 제시한 교육에 대한 견해를 기억하냐? 솔직히 지금 한국 사회에서 그런 참신한 견해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고차원적인 의견에는 누구든 경청하지 않을 수 없지. 민경이 알지?”
민경이는 첫날 시험에서 시크한 얼굴로 1등을 했던 여자 아이다.
“심민경 알지. 걔가 왜?”
“내가 그 날 양선생과 맞선 이후로 심민경이 날 보는 눈빛이 달라졌어. 너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알 수가 있지.”
“설마. 네가 착각하는 거겠지.”
“이거 봐. 내가 말했지? 너는 아직 잘 모를 거라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였지만 김웅섭 자신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할 말을 잃은 나에게 김웅섭이 말했다.
“뭐, 그리 놀랄 것 없어. 흔히 있는 일이니까. 그게 내가 여자 따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 시간이 많은 사람은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나도 왠지 모르게 여자에게는 집착을 하지 않게 되더라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존재랄까? 그러다보니 연애 따위 하찮은 일에 관심 가지기엔 내 시간이 너무 아깝더라. 그리고 솔직히 정신 연령이라는 건 나이랑 비례하는 게 절대로 아니거든. 내가 봤을 때 양선생을 비롯해서 우리 반에 있는 애들은 전부 다 유치원 수준이라고. 내가 유독 돋보이는 것도 그래서 아니겠냐? 양선생은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나를 겁박하고 어떻게든 기를 꺾어보려는 거지.”
여태껏 김웅섭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는 마치 대화에 굶주린 사람처럼 자신의 생각을 중국집 테이블 위에 쏟아 부었다. 나로서는 딱히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김웅섭의 이야기를 내가 알고 있는 사실관계에 대입해보느라 분주했다. 심민경이 자신을 짝사랑하고, 양선생이 자신을 시샘한다?
지금까지 김웅섭이 독특한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자기만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현실감각이 없다는 말로 김웅섭을 표현하는 건 역부족이다. 괴리감도 이정도면 거의 평행우주 수준이니까. 나는 김웅섭이 인식하는 세계와 내가 살고 있는 세계 사이에서 어떤 접점을 찾아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내가 물었다.
“네가 말했던 견해가 참신하다고?”
“당연하지. 그럼 넌 나랑 비슷한 말 하는 사람 본 적 있어?”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창의교육....... 그건 학습지 광고에 자주 쓰는 말이잖아. 아니면 부적응자들이 가는 사이비 대안교육 기관 홍보 카피라던가.”
다소 공격적인 나의 태도에 김웅섭은 당황한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자신의 빈약한 주장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은 전부 그런 식으로 교육하고 있어. 설마 우리나라의 입시제도가 선진국의 시스템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겠지?”
“미국은 물론이고 프랑스나 독일에도 엘리트 교육은 분명히 존재해.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교육을 받으려면 시험 성적이 좋아야 해.”
“뭐,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하지. 그래서 천재들은 정규 교육기관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거야. 너 아인슈타인 알지? 그 사람은 고등학교 때 낙제를 받았어. 선생들이 다 그 사람을 싫어했지. 주커버그나 스티브 잡스도 대학교 중퇴했다는 건 알지?”
나는 그쯤에서 김웅섭의 지적 능력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김웅섭의 행태가 고기능 자폐아와 유사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가설은 10분만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이 고등학교 시절 낙제를 했다는 루머는 독일의 채점 방식을 오해한 미국인들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독일 성적표의 ‘4점’은 ‘우수’였다. 그걸 미국인들은 D학점으로 번역했다. 아인슈타인이 어떤 학생이었는지는 몰라도 그가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주커버그나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중퇴한 것도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주커버그는 입학시험에서 기록적인 점수를 받고 하버드에 들어갔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의 명문 리드대학 철학과를 갔고,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학비가 아까워서 관뒀다. 어쨌거나 두 사람 모두 공부를 잘했거나 머리가 좋았다는 건 사실이다. 물론 김웅섭의 주장처럼 학창 시절 꼴통이었던 놈이 잘 되는 경우도 제법 있긴 하겠지만 아인슈타인과 주커버그의 사례까지 끌고 와서는 고작 한다는 얘기가 ‘사실 나는 천재였어.’라니.
양선생 험담에 할 말이 많았던 김웅섭은 요지부동이었다.
“양선생 그 인간은 완전 허당이야. 너 티브이에서 김종국이랑 추성훈 팔씨름 하는 거 봤지? 김종국은 완전 보디빌더 뺨치는 근육맨인데 팔씨름에서는 추성훈한테 상대도 안 되잖아. 그게 보여주기 식 근육의 한계야. 실전근육에는 상대도 안 된다고.”
“실전근육?”
“너 격투기선수 효도르 알지? 걔가 보면 나랑 체형이 비슷해. 배도 적당히 나오고. 원래 지방이 좀 있어야 지구력이 높데. 근육이 지방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거든. 그래서 효도르가 싸움에선 백전 백승이잖냐. 솔직히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양선생 따위는 나한테 상대도 안 될걸?”
“너 태어나서 한번이라도 누구랑 싸워본 적 있어?”
내가 물었다. 김웅섭은 썰렁한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되물었다.
“너 버츄어 파이터 해본 적 있냐? 나 그거 고수야. ‘아키라키드’ 신의욱처럼 웬만한 스텝 정도는 다 밟을 줄 안다고 봐야지. 그런데 거기 나오는 기술들이 아무래도 다 위험한 살인기술 아니겠냐. 그러니까 그냥 참는 거야. ‘탁’ 쳤는데 ‘억’ 하고 죽기라도 하면 어쩌냐?”
김웅섭은 손을 들어 허공에 정권을 지르는 시늉을 했다. 김웅섭의 손은 하얗고 포동포동했다. 너클파트는 살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도라에몽 같은 주먹으로는 사람을 때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 놈은 양파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껍질이 나오는 양파. 도대체 언제까지 벗겨야 천재적인 재능이나 참신한 견해가 나올 것인가? 김웅섭의 고기능 자폐설은 자동 폐기되었다. 허탈한 심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김웅섭이 갑자기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넌 목표하는 대학이 어디냐?”
“목표는 일단 스카이긴 한데, 현실적으로는 서성한만 가도 만족할 것 같다.”
“패배주의적이군.”
김웅섭의 말을 들은 나는 살짝 빈정이 상했다. 아버지나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었다면 ‘아차’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 과목이 낙제수준인 꼴통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나는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를 처먹고 있는 김웅섭에게 퉁명스레 물었다.
“넌 어딘데?”
“나? 난 거짓말 안 해. 사실 난 머리가 엄청 좋아. 내년부터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 정도는 갈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대학이 내 인생의 목표도 아니고, 인생에는 공부보다 중요한 것들이 더 많아. 너도 봐서 알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스스로 배울 거리를 찾아가는 능동적 학습법이 훨씬 남는 게 많거든.”
“그럼 앞으로도 그...... ‘능동적 학습’을 할 거란 말이지? 수능은 안치고?”
“야, 그래도 사람이 대학은 나와야지.”
김웅섭은 코웃음을 치며 거만한 태도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꾀죄죄한 중국집 의자에 누울 듯이 앉아 다리를 꼬는 그 모습은 어쩐지 우화적인 구석이 있었다. 김웅섭의 과장된 자신감은 어디서나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서강대쯤 갈 생각이야. 지금 배우고 익히는 게 끝나면, 고3 여름쯤엔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한 학기 정도 준비하면 현실적으로 그 정도는 갈 수 있겠지.”
내가 봤을 때 김웅섭이 서강대를 가려면 지금부터 수능시험 당일까지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온종일 책만 봐야 한다. 지금 정신 차려도 수도권 4년제를 갈까 말까한 녀석이 어떻게 이런 자신감을 보일 수 있을까?
김웅섭과는 1시간 정도 더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비교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역사나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그의 견해를 들어봤는데, 김웅섭이 그토록 자신하던 바에 비해 그의 견해는 별로 대수로울 게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펜을 들고 노트를 펼쳤다.
‘김웅섭은 특별한가? 그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가?’
양선생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 질문 아래에, 나는 나만의 주석을 달았다.
‘지극히 평범, 혹은 평범 이하. 아직까지 비범한 점은 전혀 찾을 수 없음.’
나는 머리에 떠오르는 몇 가지를 더 적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노트를 덮었다. 섣부른 주석을 달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였다. 하나에게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녀가 어떤 논평을 할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