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그 논리적 툴에 맞게 제가 그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아직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가를 보자. 나는 여자애 셋을 태워죽인 은봉암 사건의 가해자를 피해자만큼 동정한다. 군 복무 중 집을 빼앗기고 가족이 해체되는 걸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젊은 청년이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원한에 의한 살인 관계는 보통 괴로워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흔히들 금붕어는 지능이 낮아서 삼 초면 뭐든 까먹는다고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연구해봤더니 그게 아니라 금붕어는 머리가 나빠서 한 번 고통받으면 죽을 때까지 그걸 처리를 못한다고 한다. 망각이 안 되니 그 때 고통을 그대로 다 가져가는 것이다. 그 때 그 새끼한테 맞은 덕분에 수 년 간 머리 안에 지렁이 몇 마리가 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하루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벽에 머리를 수십 차례 박은 적도 부지기수다.
한때는 좀 무리를 해서라도 이 녀석의 가족을 통째로 납치할 생각도 있었다.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도 있었다. 먼저 수렵 면허를 딴다. 그리고 천 만원짜리 엽총을 산다. 자기 소유물임에도 수렵 시즌에만 사용이 가능하며 그마저도 아홉 시가 넘으면 경찰서에 반환해야 하지만 하루 반환이 늦었다고 무장경찰대가 출동할 리 없지 않은가. 내가 어디가서 뭘 하고 있는지 알기도 어렵고 말이다.
이 녀석 집에 침입해 가족 구성원 중 이 녀석이 가장 덜 사랑할 것 같은 사람을 시범으로 한 명 죽이고, 이 녀석 손으로 직접 다른 가족들을 묶게 할 생각이었다. 소금에 절이거나 굶겨 죽이는 건 시간 상 무리일 듯 싶고, 예전 가정 파괴범들이나 지금도 내전이 횡행하는 지역에 흔히 발생하는 일처럼 흉기로 위협해서 가족끼리 서로 강간을 하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한 명씩 불에 태워 죽이고 자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난 이 녀석 한 명을 그것도 고통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죽일 생각이다. 아직도 이 놈을 미워한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이다. 살면서 사람을 선악으로 나누는 극단론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십 년이란 세월은 범죄자 하나를 순한 양 한 마리로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다. 한국 사회는 그런 이상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멀쩡하게 놔둘 만큼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또라이 범생이었던 나 이상으로 겉멋 든 양아치였던 그도 변했을지 모른다. 찾아가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한다면 의외로 순순히 예스라고 답할지도 모르고, 술 자리에서는 사과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하간 나는 이 녀석을 죽일 생각이다. 바로 아까 설파한 정신병자의 첫 번째 특징이 아니라 두 번째 특징 때문이다. 그게 내 삶을 관통하여 이해하는 한 축이니 말이다.
유치하다고 비웃을 셈인가?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 허허 웃으며, 그저 튀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냐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조롱하듯 '넌 참 평범해.'라고 말을 한다.
팔목을 그은 흔적이 수십 개가 넘던 KM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유명 소설가를 닮고 싶은 철 없는 영혼이라 자해를 한다고 믿었었다. 나는 자해 흔적도 없을 뿐더러 비교적 제도권 내에서 성실히 살아왔으니 당신이 그런 평가를 할 수도 있겠지. 난 그게 참 싫더라. 왜소한 버지니아 텍의 총기난사범 조승희도 그런 말을 했을 때 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본인의 표현대로 '모세가 바다를 가르는 것 같은 결과'를 만들었다.
그간 좋은 일도 많아서 여러 모로 누구러졌다. 그래서 곱게 한 명만을 죽일 셈이며 명동 거리를 난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세상에 대한 내 기본 인식은 변한 적이 없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당신이 부정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