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자전적 소설] 1편

admljy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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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범조는 쿠퍼액 임신으로 태어났다. 혹 모를 수도 있는 어린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쿠퍼액 임신이란 자연 피임의 실패에 의한 임신을 말한다. 남자가 사정하기 전 음경의 끝에 쿠퍼액이라는 액체가 송글송글하게 나오는데, 극히 소량이다만 여기도 정자가 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럼 좆되는 거지.

어떻게 그런 구질구질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됐냐면-어차피 나의 탄생만큼이나 별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별로 잘 여자도 없었던 주제에 나도 이제 남자라고 폼 재본다고 지갑에 넣어두었던 콘돔이 어머니에게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신나게 두들겨 맞으면서-친구들과 졸업 기념으로 하나 씩 나누어 가졌다고 핑계를 댔다가 왜 그런 놈들이랑 친하게 지내냐고 더 맞았다-내가 왜 가난한 살림살이에 태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나이도 먹었으니 그냥 추억으로나 넘길 법한 사건이다만 최근 1년 간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나는 그 사건과 연관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연 나 이범조는 제대로 된 팔팔한 정자가 수억 마리 경쟁하는 환경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었을까?

회의적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경쟁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빠른 포기는 언제나 인생의 미덕. 걸음걸이도 이상하고 누군가 말하길 인간으로서 밀도도 떨어진다. 그래서 생각한다. 실은 내 출생 자체가 일종의 요행은 아니었을까.

남자 놈이 곰살궃게 궁상을 떠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굳이 자학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좀 거창하긴 합니다만 저는 패배했다는 걸 공공연히 선언하고 인생의 발전적 해체를 한 번 논해보고자 이 글을 적어보는 것입니다.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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