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네 친구가 없었다. 어린시절 우리 집은 가난했고, 우리는 월세가 끝날 때 쯤.. 다른 곳으로 계속 이사를 했다. 등본이었는지... 우리집이 이사한 내용이 적힌 종이의 앞면이.. 이사한 집 주소로 가득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익숙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헤어진다는 것은 슬펐고, 상처가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앞에 신혼부부가 조그만 미니 슈퍼를 했다. 불과 1, 2년이었지만... 어머님이 반찬도 많이 가져다주고 하시면서... 친절한 그 부부와 우리 집은 많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가난하고.. 발전 없던 그 동네에.. 사람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 부부도 좀 더 시내쪽으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나는 몇 마디 나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내주는 이들이 떠나는 것에.. 많이 아쉬워했다.
어린 나이에 슬펐던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왜 계속 좋은 사람들과는.... 헤어져야만 하는거야?
엄마의 대답은 단순했다. 하지만 명확했다.
그래, 헤어짐이 아쉽겠지만, 그래도 헤어짐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도 있는거야.
고등학교 때... 나는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느낀적이 있다. 사립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는 학생들에게 책을 강제로 구입하도록 했다. 강매했던 그 책은.. 우리 학교 선생님께서 낸 물리학에 대한 교양서적이었다. 나는 모든 학생에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집 형편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나는 그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특별히 공부를 잘하거나, 무엇인가 잘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책을 사고 싶지 않은 사람은 손을 들라는 교사의 말에... 나는 아무말 없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담임 교사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내 뒷통수를 휘갈겼다..하지만... 내가 아팠던 것은 맞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고3 담임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담임은 툭하면.. 나를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투의 말을 했다.... 나와 친했던 몇 명의 친구들이... 조금씩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엄청난 상처와.. 충격을 받았다. 갈수록 말수가 줄어들었고.. 고개가 숙여졌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 때 한 친구가 말했다.
매점에 라면 하나 먹을러 갈래?
그 친구와 함께 맛있는 라면을 먹고, 아몬드 빵을 나눠 먹었다.
뭐하러 나서노? 그냥 가만있지...
그냥.. 그건 좀 아니잖아..
어이그 병신 지랄하네.......... 고삼 담임이 원서 쓰는거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래.. 친구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우리 때는... 그랬다.. 우린 아직 어렸다.
어느덧 몇 십년이 지났고, 나는 특수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내가 소개해 준 초등학교 선생님과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친구놈은 장난처럼.. 나의 아픈 과거를... 무용담처럼 얘기하곤 한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나의 행동이 멋있었다고 말한다.
그래.... 그랬다..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다시 사람에게 아무는 것 같았다. 살아보니 그랬다.
강원도 GOP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군대 고참에게 몇 달 동안 맞았던 순간.... 안전장치만 풀고 방아쇠만 당기면... 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만 때리면 되는데.. 부모님을 들먹이는 고참 새끼를...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참아갔다.
그때에도... 체육과 출신 한 고참이.. 같이 축구하고, 탁구치며.. 진심으로 다가와 주었다. 맞은 걸로 치면... 그 체육과 고참이 장난치며 때린것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마음속에 위로가 있었다.
좋아하던 사람에게 배신 당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나는 .. 말해준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더라.... 그 여자/그 남자보다 ... 훨씬 더 좋은 사람 많다. 나도 내 아내를 그렇게 만났다.
가진 것은 개뿔도 없고, 맨날 노가다며... 알바를 찾아 뛰어 다녔는데..... 그래도 해뜰날이 있더라. 나도 그랬다.
인생은 그렇게 내리막이 있으면, 항상 오르막이 있더라.
ps. 이번에 사람에게 받은 상처 치유해줘서 고맙습니다. @ribai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