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모론자가 아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엔 축구, 영어회화 동아리 등 사람을 많이 만났다. 술도 마시고, 서로 간의 무의미한 SNS 안부와 농담, 뒤풀이.. 그런 것들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은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다.
지금도 사람들은 소외받지 않기 위해, 사회적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살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너무 바빠졌다. IMF 시대를 지났는데도.. 살기가 힘들었다. 감당하기 힘든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하고, 각박한 세상에 생존하기 위해, 나는 혼자가 되어 갔다.
방학이면 각종 노가다와 알바를 뛰었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마련하진 못했다. 학기 중엔 장학금을 타기 위해 도서관에 살았다. 여유란 없었다. 가끔 저녁은 도시락에 물이나 라면을 말아서 먹었다. 장소는 도서관 맨 꼭대기, 화장실 옆 계단이었고, 나는 혼자였다.
옆 사람들이 보기엔 외롭고, 안쓰러워 보인다. 하지만 늘... "반전"은 있다. 내가 얻은 것은 외로움과 장학금뿐만이 아니다. 내가 20대 중반에, 방황의 시간 동안 얻은 것은 바로, 혼자가 되는 힘이었다. 혼자서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합리적인 의심, 세상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하게 나를 생존시킬 무기라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합격과 돈이 아니다. 바로 "생각하는 힘"이 바로 나를 생존하게 하리라.
나는 수석 졸업을 했다. 학점은 4.42였던 것 같다. 장학금으로 1500만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수석 졸업을 했던 나는 마이너스 1000만원의 빚쟁이였다. 부모님은 많이 배우지 못하셨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다.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는 나보다, 어머님은 일찍 일어나 밥을 준비하셨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은 항상 새벽에 일어나고, 밤 1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셨다.
공부할 때 나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최소한 부모님께서 일하는 시간만큼은 공부하자. 다음으로, 부모님께 부끄럽게 공부하진 말자. 다행히.... 나는 합격을 하고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우리 집안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앞으로 더 힘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님의 노후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나에게 아직 미래를 보장할 힘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이, 그리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우리는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살아간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왜 그럴까? 분명,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며 살면, 부자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국정 농단으로, 박근혜씨와 최순실이란 사람이 감옥에 갔다. 사람들은 촛불 혁명과 시민들의 힘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유명했던 연예인들이, 마약 / 스폰 / 결혼 / 이혼 / 파산 / 등의 이유로 이슈가 되고 있다. 그들의 삶이 내 삶과 뭐가 그리 상관이 있을까? 나는 이러한 불필요한 정보들을 과할 정도로 접해야 하는가? 미디어 언론이 하는 일은 이런 것일까?
축구 국가대표팀의 시합이 곧 있을 예정이다. 과거 국가대표팀의 성적에 따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것이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축구 감독이다. 그런데, 축구 감독만의 잘못인가? 축구선수는? 대한축구협회는? 우리 사회는 대중의 분노와 관심, 이슈거리의 "희생양"이 필요하다.
고대 영화에는 다른 부족을 점령하고, 이들을 태양신에게 재물로 바친다. 이들에게도 희생양은 필요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부족의 기득권들에게는 희생양이 필요하다. 부의 공평한 분배는 언제나 불가능하다. 다만 사람들의 생각과 관념, 불만과 분노, 이슈거리를 대체할 희생양이... .기득권에겐 필요하다.
그리고 불변하는 세상의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세상은 불공평하다"라는 명제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득권이 우리를 지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사람들을 모두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면 된다. 사람들은 가난에 벗어나 돈을 벌기 위해 움직인다. 바로, 기득권이 짜 놓은 시나리오, 그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일하고 돈을 번다.
다음으로 기득권이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서 꼭 필요한 과정이 바로, 사람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뺏는 것이다. 노동은 돈과의 거래가 아니다. 노동은 정확히 시간과의 거래이다. 자신의 시간을 주고, 파이를 얻어먹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뱅이가 될 수 있다. 가난뱅이도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비율은 어느정도나 될까? 시장에 나물 파는 할머니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전국에 만 명이 넘는 나물파는 할머니 중에 과연 몇 %가 부자가 될까? 할머니 옆으로 벤츠가 지나간다. 전국에 벤츠를 타고 있는 만 명 넘는 부자는 과연 몇 %가 가난뱅이가 될까? 부자들은 이미 금, 달러, 부동산, 주식 등으로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
이야기의 초점은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가정과 반론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짜여진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본인의 생각하는 힘의 여부, 그 사색의 정도에 따라, 우리는 고된 삶을 극복할 것이다. 솔직히 나도 모른다. 나의 머리론, 그저 지금은 짜여진 시나리오라는 것이 존재하는구나 정도만 느낄 뿐이다.
TV에는 아파서 병원에도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모금하는 프로그램이 반영 중이다. 불쌍하다. 무엇이 잘못일까? 그 방송을 보는 사람들 중에는 스테이크 썰며, 외국 여행 다니는 부잣집 자녀도 있다. 이상하다. 무엇이 잘못일까?
이 세상에 가장 큰 복은 바로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다. 경제적인 소득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왜 그래야 할까? 왜 그런 비중이 높아야 할까? 자본주의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평등이 있다고 하는데.. 왜 많은 사람들은 이리도 힘들고, 세상은 이리도 불공평해 보일까?
이렇게 불공평함을 외치는 사람들을 그저 강성노조, 파업은 나쁜 것... 이라고만 치부되어야만 하는 걸까? 최저시급을 올린다는데.. 세상이 망할 것처럼 말한다. 과연 지금 이 물가에 최저시급을 높이는 것은 정말 잘못된 선택인가? 파이를 나눠 먹는 것은..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일까? 그저 물가와 임금의 현저한 격차를 맞춰주는, 쉬어가는 타임이 아닐까? 어차피 우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다시 가난해지게 되어있다.
어차피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지 못할 것이라면, 자본주의는 또 다른 불공평한 세습의 한 형태가 아닐까? 우리는 북한의 세습, 공산주의를.... 우리의 자본주의가 불공평한 것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부의 불공평한 분배, 화폐 경제의 불신, 무한정 달러와 원화 찍어내기.... 시스템이 불안정하고, 사람들의 불만이 가득할 시점에 제2의 IMF가 찾아오지 말란 법이 있을까? 우리는 이미 열심히 살았는데도 IMF는 찾아왔다. 그것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득권이 우리를 지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생각할 기회를 없애고, 우리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면 된다. 우리는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 착각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자본주의 세상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