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신경쇠약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들어주는 이는 없었지만). 짧은 새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들이 다발적으로 생겼는데, 그중 몇 개는 내가 자초한 것도 있었고,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도 있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악재가 겹친 건진 모르겠지만, 몸도 안 좋아졌고, 그래서 안 좋은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나의 특급 미루기가 발동했다. 해야 하는 모든 일을 (심지어 그것에 대한 생각마저도) 미뤄놓고 누워있거나 우울해하기 일쑤였고, 그래서 우울은 점점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최근 며칠은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농담처럼 몇 번 했었고, 사라지고 싶은데 사라지지 못하는 사실이 잠깐씩 슬펐다. 누군가 옆에 있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스스로 중심을 다시 잡고서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오늘은 그 우울함, 예민함, 불안함과 같은 감정이 최고점을 돌파했다. 간만에 아주 깊은 무기력과 우울함을 느꼈다. 그 우울함이 저점이었을까? 바닥을 친 내 감정의 그래프는 갑자기 수직상승해 해야 할 일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고, 그래서 단숨에 많은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끝냈을 땐 기분이 꽤 좋아졌다.
요즘 해묵은 악보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것을 한데 모아보면 피아노의 키도 거뜬히 넘길 정도로 많은 양이다. 반은 버렸고, 반은 이면지로 쓰기 위해 한쪽에 모아뒀다. 갈수록 프린트할 일이 없어지는데, 이 방대한 A4용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멀쩡한 종이를 버리는 게 마음에 걸려 다시 또 종이 산을 쌓아뒀다.
악보를 정리하다 보니 오래전 끄적였던 습작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곡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거나, 가끔 영감을 받았을 때 오선지에 적어 놓은 8~16마디 정도의 악보들이었다. 그것은 곡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또 버리자니 마음이 약해져 한데 모아 보면대 위에 올려뒀다.
우울할수록, 몸이 가라앉을수록 피아노를 더 많이 쳤다. 오늘은 보면대 위에 올려놓은 그 악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앞에 놓인 악보는 8마디의 짧은 멜로디였는데 멜로디와 코드가 괴상했다.
요즘 나는 뉴에이지나 동요에 가까운(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Diatonic Chord의 비중이 높은, Diatonic Scale의 음으로 멜로디를 만드는) 쉬운 곡들을 쓰고 있어 저 곡이 더 괴상하게 들렸다. 굳이 화성학적으로 따지자면 모두 분석도 가능했지만, 정작 연주할 때 손에 감기지 않았고, 듣기도 불편했다. 이런 기괴한 곡을 왜 썼을까?
처음엔 악보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반복해서 치다보니 요즘 내 기분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고, 그래서 곡에 이입하게 되었다. 내 곡을 올리는 것을 무엇보다 창피해하는 나지만, 스팀잇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대로 프로그램을 켜 녹음 버튼을 누르고 한 시간 동안 짧은 8마디를 반복해 연주했다. 다 들으려고 보니 또 한 시간을 들여야해서 그냥 중간에 있는 테이크를 골랐다. 그리고 프로젝트 저장도 하지 않고 그대로 익스포트했다. 익숙한 파일명 Untitled. 오늘은 제목을 지을 힘도 없고, 저대로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대로 올려본다.
(똑같은 8마디를 계속 듣는게 익숙해져서 영상에도 똑같은 연주를 두 번 넣었다. 영상을 추출하고 나니 타이밍이 좀 아쉬운데, 귀찮아서 그냥 올린다. 악기도 포맷 후 깔지 않아 기본 가상악기. 죄다 엉망이지만, 요즘은 마음이 편해져 음악 좀 못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든다.)
< Untitled >
사람들에게도 기괴하게 들리는지, 그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