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혼자 가거나, 가족과 함께 가거나 한다. 우리 가족은 명절 때마다 친척 집에 가지 않고 여행을 간다. 우리는 꼬박 넷밖에 없으므로 한 명이 빠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보이지 않는 압박에 의한 것이므로 실제 여행은 혼자 다닌다 해도 무방하다.
내가 여행을 혼자 다니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행의 템포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없는 아름다운 곳에 들어앉아 꼬박 하루를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곳에 오니 죽을 맛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보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앉아만 있고 싶다. 동생은 여기에 가고 싶어 하고, 엄마는 저기에 가고 싶어 한다. 나는 수동적으로 따라 움직인다.
물론 싫은 것만은 아니다. 부지런하게 다닌 덕분에 혼자였다면 평생 못 해봤을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있다.
문제는 감정의 소화다. 새로운 것을 느끼면 한참 곱씹어 생각을 소화해야 한다. 그런데 말들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기도 전에 콱 막힌 느낌이 든다.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그 위로 또 다른 것을 쑤셔 넣는 기분이 든다. 바로 이동 수단에 올라타야 한다거나, 나가서 밥을 먹어야 하는 그런 것들이다. 설사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나는 체해버리고 만다.
어제는 저녁을 먹다 투덜거렸다. "일정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엄마는 이렇게 편한 여행이 어딨냐며 나를 타박했다. 동생은 자기가 했던 여행 중에 가장 한가한 여행이라고 말했다. 아차 싶었다.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미안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에 돌아와 이렇게 말해버렸다. "내일은 나 안 나가고 집에 있으면 안돼?"
그럼에도 가족은 나를 많이 배려해주는 편이다. '우리 첫째는 예술가라 감성이 남들과 달라'. 실은 그게 아니라 내가 유별난 거지만, 그편이 더 설득하기도 쉽고 서로에게 좋기 때문에 군소리 없이 예술가 행세를 한다.
엄마와 동생을 어딘가로 보내두고, 둘의 여행의 템포를 헤아려본다. 이번 여행의 템포는 BPM 90정도는 되는 것 같고, 내 여행의 템포는 BPM 30 정도인 것 같다. 어찌 됐든 그들이 세 번 말하는 동안 한 번은 대답할 수 있다. 맞기만 한다면, 너무 느리고 너무 빠른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