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술을 진탕 마셨다. 실은 진탕은 아니고 평소보다 조금 더 마셨다. 막차를 타고 집에 와 바로 뻗었다. 일어났더니 숙취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어제 술자리는 간단한 미팅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가 얼마 만인지. 처음엔 싫었지만, 마지막엔 내가 가장 즐거워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오랜만에 편안함과 즐거움, 그리고 의욕샘솟을 느꼈다. 티키타카 오가는 대화 속에서 계속 새로운 생각이 쌓였고, 나는 얼른 그걸 만들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조화가 좋아 한 번 더 같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업을 열심히 해 그들과 또 다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전에 어떤 작곡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프로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임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했다.
아무도 모르는 영화, 보리스 레만의 장례식(죽어가는 예술에 대하여)이 떠오른다. 작년인가 재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봤던 영화다. 이 영화는 감독 스스로 찍은 본인의 마지막 작품이다. 자신의 죽음을 영화로 만들고, 직접 배우가 되어 연기했다.
보리스 레만은 500여 편의 영화를 찍었으니 생을 전부 영화에 바친 셈이다. 나는 그랬기에 스스로 마지막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과 만나면 대화의 내용은 대개 추억팔이가 된다. "그때 너 그랬잖아." " 그때 걔 그랬던 거 기억나?" 그러다가 술이 좀 들어가면 이런 얘기를 한다. "근데 나 지금 돌아가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거나, "한 번만 더 그 사람들과 다시 해보고 싶어."
나도 정말, 그때로 돌아가 그 사람들과 제대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몇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때보다 지금 실력이 더 나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그 때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과 죄책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간절히 바란다 한들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돌아간다 하더라도 다시 실수투성일 것이다. 막연하게 다음을 기약하면서, 혹은 너무 많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지금을 그냥 보낸 것도 같다. 이번 작품이 나의 마지막이 된다면 어떨까?
답 : 당연히 부끄럽고 절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