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슬픔은 자랑이 되는가?"
며칠 전 새로운 몇 명을 알게 됐다. 우리는 서로 잘 몰랐다. 가볍게 시작된 이야기가 불쑥 깊어졌다. 당혹스러웠다. 이야기를 꺼낸 건 난데,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들은 삶의 투쟁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랐다. 애써 슬픔을 쥐어짜 냈다. 나도 이만큼 힘들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슬퍼요.
갑작스레 마주한 그들의 슬픔은 나를 붙잡고 한참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의 슬픔에 대해 생각했다. 담담한 어조로 말하던 담담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들을 피하게 됐다. 나도 그만큼 슬프다는 바보 같은 말을 계속 늘어놓을 순 없었다. 아마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슬프지 않다는 것을.
슬픔을 비교할 수 있을까, 슬픔을 자로 잴 수 있을까. 문득 슬픔에는 체급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작은 슬픔으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착각이고, 오만일까?
자랑처럼 내세운 나의 슬픔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하루다. 나의 슬픔은 자랑이 되는가. 자랑이 될 만큼 찬란한가? 자랑이 될 만큼 찬란한 슬픔이란, 그들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일까?
문득, 이 말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 박준의 시구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에서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당신의 깊고, 깊은 슬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