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쩌다 귀농) "난 시골에서 못 살거 같아"하면서 단행한 야반도주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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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우리는 경북 상주에 귀농하여 2016년 10월 5일 제주도로 이사오기까지 시골 생활을 했었다.
9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어쩌다 귀농'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귀농이야기를 연재해볼 생각이다.

식구들이 총 동원되어 우리의 성공적인 귀농을 위하여 이삿짐을 함께 날랐고 강구항까지 가서 맛있는 대게를 먹으며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식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특히 엄마는 하룻밤 정도 함께 나와 자 주고 싶어하셨지만, 아빠가 혼자 집에 계시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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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낯선 경상도 상주에 나와 남편 둘이 남겨졌다.
낯선 집에서 낯선 화장실을 가고, 낯선 부엌에서는 아직 밥은 못해 먹고 커피나 한잔씩 끓여먹을 정도고, 무엇보다도 낯선 방에서 자야했다.
봄이 시작되는 3월인데도 나의 기분 탓인지 상주는 너무너무 추웠다.

귀농 전에는 완전히 난방이 잘 되는 분당에 새로지은 오피스텔에서 살았었다.
우리집에 굳이 난방을 하지 않아도 전체 건물에 기본 난방을 하고 있었고, 아래층 윗층에서 언제나 따뜻하게 난방을 했으며, 단열 장치도 잘 되어 있어서 한겨울 찬바람이 들어올 틈도 없는 완벽한 오피스텔이었다.
우리는 거기에 살때 오히려 답답하다며 겨울에도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살 정도였다.

하지만 상주 시골집은 거의 바깥에 나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난방은 연탄 보일러로 하게 되어 있었다.
연탄을 아무리 빵빵하게 떼도 방바닥만 뜨뜻해질 뿐이고, 누워 있으면 코가 시려울 정도로 윗풍이 쎘다.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던 분당 집과는 달리 상주 시골집에서는 처음에 따뜻한 물이 조금 나오다가 금방 찬물이 나왔다.
겨우 세수나 하고 머리라도 감을라치면 나중에 행굴 때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나와 머리가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방문 틈으로 창문 틈으로 벽으로 천장으로 아직도 떠나지 않은 동장군의 찬바람이 마구 삐집고 들어오는 듯했다.

그래도 이래저래 좋은 점만 이야기하는 남편의 성의를 봐서 술도 한잔하고 티비도 보면서 첫날을 지내고 마음 다잡고 잠자리에 들었다.

으악!!!
그러나 낯설움도 추위도 아닌 다른 복병이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바로 쥐들이다.
밤이 되니 방 천장에서 쥐들이 운동회를 하는 듯 우다다다다닥 뛰기 시작했다.
어쩌다 한번이 아니라 밤새도록 뛰어다닐 기세였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쥐이다.
남편은 시골은 원래 쥐가 많다. 내일 당장 쥐덫을 사다가 놓고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보겠다고 나를 달랬지만 나는 도저히 참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난 시골에서 못 살겠어ㅜㅜ

라고 하고 집을 나와 버렸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이었다.
그대로 내 차를 타고 여기서 도망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섰다.

그런데...
완전 길치인 내게 태어나서 처음 오는 이 마을은 너무 낯선 구조였다.
마을에 40여 가구가 살고 있으니 집도 그리 많지 않고, 길도 그리 많은 게 아닌데 난 이 마을을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작은 그 마을을 서너 바퀴 돌고 나서야 겨우 아스팔트 길이 있는 마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내 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다.
하지만 워낙 시골이라 네비게이션에는 허허벌판으로 나오는 그런 마을이었다.
아무튼 겨우 네비가 나오는 길에 들어서고 나는 여동생네 집을 네비에 입력하고 그대로 경기도 수원에 있는 여동생네 집으로 가출을 했다.
오밤중에 낮에 상주에 데려다주고 온 언니가 울면서 여동생네 집에 오니 동생도 제부도 조카도 너무 놀랬지만 내 상황이 너무 심각했으므로 아무도 내게 뭐라고 말을 못했다.
나는 여동생네 도착해서 자초지종을 말하고 한참을 서럽게 운 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과 통화를 했다.
남편은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돌아오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남편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위로를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이제와서 귀농을 접을 수도 없고, 당장 쥐를 소탕할 방법도 없고...ㅜㅜ

그렇게 나는 여동생네 집에서 다음날까지 하루 더 잠을 잤다.
계속 울었지만... 나중에는 눈물도 말랐다.
사실 쥐를 원망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데도 한계는 있었다.
힘들게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상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남편과 안 살 것도 아니고, 어쨌든 귀농을 결정해 내려갔으니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동생은 내려 갔다가 또 적응하기 힘들면 다시 오라고 했다.
나도 그러마하며 안전지대를 확보한 후 다시 상주로 내려왔다.

내려오니 남편 말이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났다고 한다.
이사한 다음날 동네 사람들이 이사온 집 구경도 하고 인사도 한다고 여러 명이 왔었는데, 내가 쥐가 무서워서 이사온 날 밤 도망을 갔다고 하니 동네분들이 어이없어 했다고 하면서...

그리고 동네아주머니 한분이 내가 돌아오자마자 우리집에 또 오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동네에서 말도 제일 많고, 참견도 제일 많이 하는 그런 아주머니였다.

아무튼.

새댁이요, 쥐새끼가 뭐가 무섭다고 도망을 가요.
쥐가 새댁을 더 무서워하겠구만.
사람이 크지 쥐가 크요.

상주 와서 처음 들어보는 상주 사투리였다.
그리고 동네 아저씨들도 지나가다 나를 힐끗 보시고 피식피식 웃으셨다.

이렇게 겁쟁이 새댁이 시골마을로 이사를 왔다고 온동네 소문을 내며 나의 시골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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