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팀 #57] 데미안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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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유리알 유희"를 읽고 나서 깊은 감동과 배움을 얻었다. 무엇보다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을 완독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급변하는 날씨처럼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 새 한 달이 더 훌쩍 지나 버렸다.

한날은 동화책 모임에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분께서 "데미안" 이야기를 꺼냈다. 자연스레 데미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한 분께서 "철 없는 부잣집 도련님들 이야기!"라는 평을 하셔서 적지않게 놀랐었다. 아무리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평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졸작이었던가? 하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 기억을 되살려 데미안의 내용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10년 전에 읽은 내용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단지 그때 당시 책을 덮으면서 느꼈던 감동만이 은은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 이건 다시 한 번 읽어보라는 마음의 소리야.'라는 결론에 도달한 나는 도서관에 들렸고, 우연인지 모르지만 유리알 유희 다음으로 읽고 싶었던 "싯다르타"와 한묶음으로 되어 있는 책을 발견해냈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명성을 내려놓고 쓴 소설로, 첫 출간 당시 "싱클레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겠지만 데미안 속 주인공 이름 역시 싱클레어다. 아마도 싱클레어에 자신을 투영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성인이 된 싱클레어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데미안이 존재한다. 그에게 데미안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넘어 본질적인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선지자적인 역할을 한다. 여하튼 싱클레어의 첫 회상 장면은 8살 즈음에서 시작된다. 그는 부자집 아들로 부족함 없이 밝게 자라는 아이였다. 어느 날 클로머라는 불량아와 어울리다가 약점을 잡히게 되고 이를 계기로 점점 어둠에 물들게 된다. 그때를 회상하는 부분에서 나는 싱클레어와 하나가 되었고 그가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 절망, 고립, 불안 등을 온전히 함께 했다. 참으로 불쾌한 기분이었다. 순수한 아이를 타락시키고 고통받게 하는 클로머를 함께 비난하며 희망을 꿈꿨다. 그때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그 빛은 바로 데미안이었다. 싱클레어가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부모님이 아닌, 철저히 타인에 불구한 데미안이 그의 구원자였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그를 믿고 따르면서 존경하는 동시에, 의심하고 경계하며 거리를 두어 온 걸지도 모른다.

싱클레어의 성장은 항상 선과 악의 경계에 있다. 때로는 선으로 때로는 악으로 넘나들며 불안하게 성장하며 가끔씩 데미안을 추억한다. 그 시절 싱클레어는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의도, 끌어당김, 동기화)을 경험하면서 그것을 이미지화한 그림을 그리게 되고, 지금에 와서 그 유명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명언이 탄성하게 된다. 아프락사스에 대한 단서를 찾던 중 피스토리우스라는 음악가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데미안과 비슷한 사상을 배우게 된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동거동락하지만, 한 마디의 말실수를 통해 그와 멀어지게 되고 마음이 이끄는데로 헤매이다가 결국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데미안의 어머니를 만나면서 지금껏 자신이 느끼지 못한 안정과 평온과 행복을, 그리고 사랑을 느낀다.

소설 데미안은 단순한 소설에 그치지 않는다. 그 속에는 헤르만 헤세의 자아와 그가 이룬 성찰, 깨달음, 반전(反戰)에 대한 그의 소신과 철학이 담겨있다. 적어도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단순히 철 없는 부자집 도련님들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다. 사실 데미안을 다 읽고 나서 그 말을 반박하는 의견으로 독후감을 쓸까 했다가, 싯다르타를 읽고 나서 그런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 단지 그뿐이다. 오히려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게 기회를 마련해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새롭게 시작한 한 주, 모든 분들이 밝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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