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추억하다 #5-3. [싱가포르] 나머지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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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은 오후 수업이 있어 새벽부터 차이니즈 가든으로 향했다.

굉장히 넓은 중국식 정원으로 기억하는데 사진이 이 한 장 밖에 없는 걸 보니, 그땐 카메라로 뭘 찍어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 하긴 아직 싸이월드도 시작하기 전이니, 당시만 해도 사진을 남기더라도 영영 하드 디스크 속에서만 잠들어 있을 줄 알았다.


이후에는 주롱 새 공원에 갔는데, 더운 나라에서 새 공원을 간 것 같지 않게 흔들리지 않은 사진이 펭귄 사진 단 한 장 밖에 없다. 말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지만, 주롱 새 공원의 경우 좁은 새장 속에 갇힌 새가 아닌, 넓은 부지의 공원을 자유롭게 오가는 새를 볼 수 있어 마음이 덜 불편한 곳이다.


그날 저녁엔 한국 친구들과 함께 탄종 파가에 있는 호커 센터에서 저녁을 먹고 클락 키를 걷던 중 사람들이 가득 찬 클럽을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도 웬 클럽인가 싶어 날짜를 봤더니 역시 금요일 저녁이었다.) 이곳의 클럽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들어가 봤는데, 담배 연기 가득한 클럽 내부에서 반라의 상태로 봉춤을 추는 언니들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 황급히 도망 왔던 기억. 결국 근처 술집에서 칵테일 한 잔씩 주문해놓고 자정이 넘도록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

그러고 보면 싱가포르는 술값이 비쌌고, 나는 돈도 없었으며, 학기 내내 텀 프로젝트와 과제, 시험에 치여 살아 두 학기 동안 친구들과 술을 마신 기억이 단 두 번 밖에 없다. 신기한 것은 당연히 술자리로 이어질 줄 알았던 교환학생 OT 또한 간단한 쿠키와 차로 끝나버렸다는 것. 대학교에서 나오자마자 술집이 이어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곳의 대학교에서 술집까지 가려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적어도 30분은 이동해야 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넷째 날은 약 82만 평의 부지에 온갖 열대 식물을 심어놓은 보타닉 가든으로 향했다. 싱가포르는 공원이 아니더라도 워낙 여기저기에 조경이 잘 되어 있어 당시에는 별 감흥 없이 공원을 둘러봤지만, 사막에 살고 있는 지금은 푸릇푸릇 한 잔디만 봐도 마음이 설렌다.

당시에는 보타닉 가든 근처에 딱히 갈 곳이 없었지만, 지금은 근처의 뎀시 힐(Dempsey Hill)이 PS.Cafe, Chopsuey Cafe 등과 함께 몇 년째 핫 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으므로, 싱가포르를 여행한다면 조용히 보타닉 가든을 산책한 후 뎀시 힐에서 점심을 먹어도 좋을 것 같다.


보타닉 가든에 속해있는 오키드 가든의 경우 싱가포르에 유명 인사가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 들리며,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난초에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 예로는 배용준 난을 들 수 있다.


지금은 ION 오차드가 된 오차드 지하철역부터 다카시마야 백화점까지의 푸드코트는 맛있는 먹을거리로 가득했다. Wisma Atria를 지나는 통로는 항상 Famous Amos의 달콤한 초콜릿 향기로 가득 차 있어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쿠키 가게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고, 다카시마야 백화점의 다코야키, 비어드 파파, 버블티, 알로에와 꿀이 첨가된 레몬주스도 한창 유행이었다. 당시 비어드 파파 슈크림 빵 하나의 가격과 집까지 돌아오는 버스비가 비슷해서 슈크림 빵을 입에 무는 대신 2시간씩 집에 걸어오곤 했었지만, 남자친구와 함께했던 이 날 만큼은 초코 브라우니부터 레몬주스까지 모두 하나씩 사 먹었다.


이날 저녁엔 다시 센토사섬으로 향했다. 우리가 탔던 검은색의 케이블 카는 조금 더 비싼 대신 바닥도 유리로 되어 있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래가 보이는 만큼 숲 위를 지날 때는 더 무서웠다. 하지만 이용객이 적어 대기 줄이 짧다는 점은 참 좋았다.



시간을 멈추고 싶었던 넷째 날 저녁


마지막 날은 여행객에게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부킷 티마 자연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야생 원숭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이곳을 혼자 걸었던 적도 있는데, 그날은 내가 원숭이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원숭이 5~6마리가 나를 따라다니며 내 가방을 탐내서 어찌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사귄 후 2달 만에 처음 만났던 5일간의 짧은 데이트는 그렇게 끝이 났다. 커플 아이템을 가지고 싶었던 우리는 귀여운 고양이 인형 2개를 사서 하나씩 가졌고, 이 인형이 찢어지기 전까지 쿠션으로, 베개로 참 오랫동안 사용했다.

그러고 보면 신기한 게, 당시의 나는 귀여운 것에 관심도 없었고 여성스러운 면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성년의 날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는 질문에 256M RAM이라고 대답했을까. 게다가 강아지는 좋아했지만 고양이는 무서워했는데 어째서 첫 커플 아이템이 잠자는 고양이 인형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우리 침대는 실제 고양이 두 마리에게 점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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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정보
● Chinese Garden, Aljunied Road, Singapore
● Jurong Bird Park, Singapore
● Cluny Road, Singapore Botanic Gardens, Singapore
● Orchard Road, Singapore
● Sentosa Island, Singapore
● Hindhede Drive, Bukit Timah Nature Reserve, Singapore



여행을 추억하다 #5-3. [싱가포르] 나머지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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