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발견 #2.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에 대해 혐오를 느끼는... 오스카 와일드

문장의 융단폭격으로 쓰러지게 만드는 책, ‘도리언 글레이의 초상’은 서문에서부터 문장의 총알들이 날아든다. 문장의 총알 세례를 각오하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마주한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섹시하고도 유려한 문장에 총 맞은 것처럼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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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가에 속하는 작가들은 명언 부자들이다. 그중에서도 오스카 와일드는 문장 갑부에 속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거의 모든 문장들이 문장만으로도 완성체다. 예를 들어 서문에서 발췌한 세 개의 문단은 모두 각각의 주제를 지니고 있으며 각 문장이 완벽하다. 오늘 나의 눈에 들어온 문장은 ‘거울과 얼굴’에 대한 두 번째 문장이다. <더클래식>과 <열린책들>의 두 가지 번역본을 놓고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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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에 대한 19세기의 거부감은 캘리번(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야만인 노예)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에 대해 혐오를 느끼는 모습과 같다. 반대로 낭만주의에 대한 19세기의 거부감은 캘리반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 느끼는 분노와 같다.
더클래식 번역본


리얼리즘에 대한 19세기의 반감은 캘리번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길길이 날뛰는 것과 같다. 반면에 낭만주의에 대한 19세기의 반감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 화가 나서 미친 듯이 날뛰는 것과 같다.
열린책들 번역본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은 직관적이고 명료하지만 번역가에 따라 문장의 색과 맛이 다르다. 번역이 예술인 이유다.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을 그의 의도 그대로 느끼고 싶다. 원서를 읽을 만큼 간절하진 않다 해도. 원서를 읽지 않아도 아쉽지 않을 근사한 번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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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얼굴을 보거나 못 보거나 하여 혐오와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기애와 자기혐오의 증거일 터, 나는 나의 얼굴에 혐오도 분노도 없으니, 스스로에 대한 애정도 혐오도 지니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다.

도리언 그레이처럼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멈춘 채로 남은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무엇을 걸어야 할까? 영혼으로 도리언 그레이와 같은 미모를 살 수 있다면 영혼을 바칠 텐가? 내 영혼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도리언 그레이의 미모를 갖지 못한다. 무언가를 걸만한 무언가를 지니는 것도 행운이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19세기의 인간들보다 리얼리즘과 낭만주의에 반감과 혐오를 느끼는 듯하다. SNS로 자신을 노출하지만 SNS 상의 나를 진짜 자신으로 느끼는지 의문이다, 나 역시도... 리얼리즘과 낭만주의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마담플로르’ 문장의 발견

I. 내 영혼이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때까지 지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_ 이사도라 덩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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