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울료자(尉繚子)를 시작한다. 울료자(尉繚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위나라 양혜왕(梁惠王) 시대에 만들어진 병법서이다. 이 책은 모두 24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4,000여 자로 이루어져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이 책은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중간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여 유가(儒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병가(兵家) 등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두루 흡수한 바탕 위에,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강조한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양상을 담고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무수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체득한 전략전술(戰略戰術)과 치밀한 군제(軍制), 엄격한 훈련(訓練)과 명령체계(命令體系)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울료자(尉繚子)는 전반부에서 전쟁이란 무력을 통한 해결보다는 백성과 정치를 중요시하는 유가적 사상이 담겨 있다. 이런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후반부에서는 일부 가혹하고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긍정과 비판이 포함되어 있어 이 책은 ‘병학(兵學)의 총정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梁惠王問尉繚子曰, 黄帝刑德, 可以百勝, 有之乎. 尉繚子對曰, 刑以伐之, 德以守之. 非所謂天官時日陰陽向背也. 黄帝者, 人事而已矣.
위나라 양혜왕이 울료자에게 물었다. “옛날 황제는 둔갑법이나 점성술 등의 형덕으로 백전백승을 거두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울료자가 대답했다. “형덕은 그 본래의 뜻이 다릅니다. 반란자나 의롭지 못한 세력을 군사력으로 토벌하는 것을 형이라고 하는 것이며, 천관서에서 말하는 음양, 길흉 따위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황제가 그러한 업적을 이룬 것은 형과 덕으로써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何者, 今有城, 東西攻不能取, 南北攻不能取, 四方豈無順時乗之者邪.
“어째서 이겠습니까? 공성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에 공격해야 할 성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성은 동 서로 공격을 해도 함락시킬 수 없고, 남북으로 공격을 해도 함락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의 사면을 공격하는 측이 천관서의 길흉 일시를 몰라 공격의 호기를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然不能取者, 城高池深, 兵器備具, 財穀多積, 豪士一謀者也. 若城下池淺守弱, 則取之矣. 由是觀之, 天官時日不若人事也.
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성이 높고 해자가 깊으며 병기가 구비되고 재물과 곡식이 많이 저축되어 있으며, 호걸스러운 선비가 한결같이 도모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이 낮고 해자가 얕고 수비가 약하면 점령당하게 되니,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건대, 천관의 시일은 사람의 일처럼 중요하지 못합니다.
참고문헌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무경칠서, 서울: 서라벌인쇄, 1987
울료자(저), 울료자, 임동석(역), 서울: 동서문화사, 2009
성백효(역), 사마법,울료자,이위공문대,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