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천수경⟫ 이야기 #3 "참회, 허물에 실체가 있는가" 2/2

'살생'이란 문제는 '전쟁'이나 '해충' 정도가 아니면 굳이 생각없이 지켜도 될 만한 주제지만...

아! 그렇다 해충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건 아주 큰 주제니까 따로 장을 마련해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하자.^^ 투도란 그야말로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지만 불교에서는 주인이 있는 소유물을 처분, 유용, 더구나 이동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여기 대해서 별다른 설명은 필요없을 것이다.


가끔 절 물건을 유용하면 큰 벌을 받는다고 하지만 글쎄, 무단이 아니라면 오히려 절 물건은 공공재산인 동시에 불자들이 모두 보시한 것들이므로 절에서 사용처가 없는 물건은 다시 불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쓰임없는 물건을 쌓아놓는 것이 더 큰 문제니까 구성원들사이에서 합의만 된다면. 또한 절에 쓰이지 않는 물건들이 너무 많으면 보기에도 좋지 않으니까.

또한 불자들만 절에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불자들이 절에 보시하고 베 푸는 것은 복전福田, 즉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그러니 절도 불자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절은 부처님의 공간도, 스님의 공간도 아니다. 불자들이 주인이다. 다만 말로 명분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의무적으로 관리하고 그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강조해도 잘 안된다. 항상 스님이 1번 이고, 불자들은 손님이다. 이건 오랜 관습이자, 습관인 탓일게다.


자, 이성적인 애정, 이른바 '사음'이 문제인데, 사실 이것도 불자들이 각자가 알아서 할 문제이니 제도적으로 해라마라 할 일이 아닌 시점이다. 만일 배우자나 진지한 관계의 이성친구가 있는데 치팅을 했다면, 분명 그들에게 미안할 것이 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이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각자 당사 자들의 문제이지, 사회나 기구가 나서서 법적, 윤리적 잣대를 제도적으로 내세워서 비난하고 벌주고 간섭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권장사항이지 제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부처님은 성적인 문제에 대해 출가자들이 남성들만 모여사는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염려했을 뿐이다. 또한 여신도와의 접촉에서 금욕생활을 하는 집단에서 개인의 일탈이 가져올 대형사고들을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가자들의 이성문제에 대해 당신의 어떤 입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큰 맥락에서 동성애 등의 성적 문제는 불교의 어떤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문제되지 않는다. 성의 문제는 수행적인 차원, 사회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에 다만 출가자들에게만 이 문제가 민감하다. 그래서 스님들은 ‘사음邪淫'금지가 아니라 ‘음행淫行’이란 표현으로 성적이 모든 행위자체가 금지다. 그러니 불자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그냥 알아서 적절히 조절하시기 바란다. ^^


이상의 3가지가 신업身業, 몸으로 지을 수 있는 잘못이다. 입으로 짓는 잘못 은 이미 언급했으니 패스하고, 마지막 탐진치 이 세가지를 ‘의업意業', 즉 마음으로 짓는 허물이라고 한 것인데 불교에서 다른 잘못들은 모두 '사회적'인 잘못이지만, 이 세가지는 '철학적'인 잘못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기준이 달라지면 바뀔 수 있는 것들이어서 그 잘못 자체가 고정되어 있지는 않은데, 이 마지막 탐진치는 좀 더 근본적으로 실존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전에도 여러차례 설명 했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므로 중요하지만 넘어가자.


‘십선업’이란게 있다. 이 10악에 대한 10가지를 반대로 하는 권장사항인데, 그러니까 살생대신 방생, 도둑질 대신 보시, 사음대신... (이건 뭐지?) 그게 목표다. 잘못을 처벌하는게 목표가 아니라,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게 목표다. 그러니 이제 ' 참회'조차도 우리는 ‘발원發願'으로 바꿔야 한다. 생각해보라, 참회를 거듭해서 잘못을 되뇌이는 것 보다야 적극적으로 좋은 행위를 하는게 훨씬 생산적이고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십악참회'를 '십선발원'으로 바꾸기를 제안한다. 이걸 앞에서 소개한 '작지계'라고 부른다.


다음 구절은 천수경의 가르침이 얼마나 잘못에 대해 관대하고 현명한지를 보여준다. 정말이지 천수경의 꽃같은, 꿀같은 대목이라 할 만 하다.

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
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

100겁 동안 쌓여있는 허물
한번 마음 먹은데 싸그리 사라져
마치 바짝 마른풀을 태워버리는 것처럼
모두 사라지고 나니 흔적도 없네


수없이 많은 권선징악의 논리속에서 어쩌면 잘못한 사람을 때려잡는데 앞장서서 그것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런, 너무도 큰 잘못을 불자들은 저지르고 있지는 않았는가.


과거의 잘못을 붙들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또한 하나의 큰 잘못이다. ⟪천수경⟫의 참회란 이렇게 원래 있었는지 조차도 알 수 없게 말끔히 사라져 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상태. 그것을 '청정'하다고 한다. 물론 죄질이 심하게 나쁘고 많은 이들을 의도적으로 고통받게 한 이들에게 이를 바로 적용시키는 데 이 구절은 현실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에겐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못지 사다야 사바하


이건 무슨 말일까. 원래 발음으로 읽어보자.

OṃSarva Buddhya Bodhisattvaya svaha!
옴 사르와 붓드야 보디사뜨와야 스와하!

의미는 별게 없다.

"모든 부처님, 보살님, 뿅”


결국 지극한 '청정'이란 열반이다. 모든 마음의 갈등이 사라지고 나주관, 너객관조차 모두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된다. 이게 진정한 참회이다. 지금 부처님처럼 행동하니까 ‘행불行佛’, 더 이상 케케묵은 지난 잘못이나 따지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我昔所造諸惡業
皆由無始貪瞋癡
從身語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
내가 옛날 부터 지은 잘못들
모두 그 시작을 알 수 없이 욕심내고 미워하고 어리석음
신체와 말과 마음 씀으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모두 내가 이제 참회합니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是名眞懺悔
'죄'란 정해진 성질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쓰는데 따라 생겼네
만약 그 마음이 사라져 버리면 죄도 함께 사라지지 않겠는가
죄도 마음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나면
그것을 진짜 참회 라고 하는 것이네


이쯤 오면 탄식이 나와줘야 하는데, 아무 느낌이 없이 무덤덤 하다면, 독자가 이해를 못했거나, 필자가 번역을 맛깔나게 못한 것이다.
10선이니 10악이니 하는 것은 말하자면 초딩들에게 잘 모르니까 가르쳐주는 ‘표면적인 항목’일 뿐이다. 참회진언과 이 두 개의 게송들 얼마나 시원하고 화통한가.


사실 무슨 원죄를 따지고, 과거의 자기 잘못,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라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약간의 허물들, 부족한 인격, 미숙함 그런 모든 것들에 마치 개목걸이처럼 끌려다니지 말고, 자신의 소중함, 그리고 내가 그 소중함의 여유를 가질 때 쯤이면 보일 타인의 소중함을 챙기면 그걸로서 끝이다.

대개 사람들은 날카로운 눈을 갖길 원한다. 그런데 파란약과 빨간약을 남들보다 더 잘 고를 줄 아는 예리한 눈보다, 빨간 약이든 파란 약이든 모두 삼켜도 까딱없는 통큰 위장을 갖는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남의 잘잘못을 잘 지적하고 잘 발견하는 사람은 널리고 쌨다. 그들을 다 끌어안고도 빈자리가 남는 넉넉한 품을 갖는 무림고수가 되는 편이 낫다.


덤으로 얼마전 한국여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드라마 "도깨비"의 한 대사를 인용한다.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을 용서하여
생의 간절함을 깨닫는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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