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천수경⟫ 이야기 #2 "3악도, 6도, 8부중"

동남아에서는 절에서 읽는 예경문을 호신경문護身, parita 이라고 쓰는데, 옛날 사람들은 경전을 읽거나 몸에 지니면 여러가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천수경⟫의 핵심, ⟪대비주大悲呪⟫를 읽으면 수행의 효과도 있다고 본다. 이른바 주력수행이다. 앞으로 수없이 반복하여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드리겠지만, 당연히 주력수행은 불교의 ‘흐름’ 중 하나이지 중심은 아니다.


하늘사람과 용신 등의 모든 신들과, 성인들이 똑같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백천가지의 삼매를 순식간에 스며들듯 닦아지게 되니
[이 대비주를] 받고 지닌 [우리의] 몸은 밝은 지혜를 내세우는 깃발이 되고
[이 대비주를] 받고 지닌 [우리의] 마음 은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창고가 되네
天龍衆聖同慈護
百千三昧頓熏修
受持身是光明幢
受持心是神通藏


천룡은 '천, 용, 야차, 가루다, 건달 바, 긴나라, 마후라가, 인비인’ 등 흔히 말하는 8부중部衆의 두 글자만 딴 것이므로 그 의미는 '모든 신들'이다. 천天, deva은 대개 '하늘사람'이라고 많이 번역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신' 이다. 용naga는 물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용'이라는 이미지로 변했는데 문화의 차이로 뱀과 용이 갈라져 표현되지만 불교적인 맥락에서 이 둘은 하나이다.


뱀의 이야기는 불교신화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 때 다루기로 하자. 야차yaksa는 대개 북방불교전통에선 나찰raksasa와 함께 잡신인데, 대개 신들 중에서도 '귀신'급이다. 우리가 신과 귀신에 대해 애매한 것은 사실 서양식 신god 개념과 인도식 신deva 개념, 그리고 동양식의 귀신개념이 마구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야차는 인도에서 제법 잘 나가던 신이었지만, 아리야인이 들어온 후 사람이나 잡아먹는 하찮은 신으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가루다는Garuda는 인도신화에서 세계 유지의 신 비쉬누가 타고 다니는 새로 독수리와 유사한 이미지로 표현된다. 건달바gandharva는 음악의신으로 기타 같은 것을 들고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한국에서 주먹쫌 쓰는 분들은 자신들의 '건달'이란 용어가 이 건달바에서 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량이란 말은 엄격한 유교적 문화에선 비판받지만, 도가와 같은 자유분방한 문화에선 잘 사는 삶의 형태일 수도 있겠다. 더구나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걸 미덕으로 여기는 이런 산업화된 도시에선 한량이란 어쩌면 좀 초월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


긴나라kinara는 상반신은 사람인데 하반신은 새인 신으로 표현되는데 동남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수demi-god이다. 낀kin은 의문사이고 나라nara는 사람으로, 사람인지 아닌지 불확실한 신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었다.


마후라가Mahoraga도 역시 큰 뱀이다. 그리고 인비인은 언어상으로는 긴나라와 같은 신이지만 왜 이렇게 다른 형태로 제시되는지 알기 어렵다. 혹은 기타 언급되지 않은 애매한 신들을 뭉뚱그려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이 신들의 이름은 경전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름도 그닥 알려지지 않은 이런 신들의 존재는 참 미미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경전에서 불법의 수호천사로 알려졌던 이들이다.


오래된 사찰의 입구에서 만나는 사천왕들은 이 신들 중 두명씩을 거느리고 있다. 큰 절 사천왕문 아래쪽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들을 8부신이라고 하는데, 무협지에서 가끔 들어봤을 '천룡팔부'란 중국식 표현이 바로 이들을 의미한다. 이런 많은 신들과 또한 성인들이 한마음으로 보호해 준다고 하니 왠지 ⟪천수경⟫은 읽어야 할 것만 같다.

불교에서 숫자가 나오면 원래 곱하기다. '백천삼매'는 그러니까 100x1,000=100,000쯤 되겠다. 하지만 아시겠지만 그게 반드시 구체적인 숫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엄청많다는 과장이다. '삼매'란 의식의 흐름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감각기관들이 작동을 멈출만큼의 집중상태이다. 사실 불교에서 명상이란 그런 어떤 특정한 상태가 아니라 의식의 흐름 을 관찰하고,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 상태를 요구하니 정확히 말해서 삼매란 불교가 추구하는 목표는 결코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우리가 써 오던 말이라 대개 '수행'이나 '정신적인 단계'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할 뿐이다.


‘돈’, 이게 문제다. '돈점' 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돈주고 보는 점'은 아니고...


'돈'은 한방에, '점'은 점차적이란 뜻인데, 수행을 하면 깨달음이 돈이냐, 점이냐 하는 것은 오랜 논쟁이다. 이 논쟁은 중국에서부터 있어왔던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인것이 성철스님이다. 선종에 있어서 이 돈이란 말은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지만, ⟪천수경⟫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가 크게 신경써야 할 만한 주제는 아닐 것이다.


한 가지 더, 뒤따라 나오는 '훈' 이란 말은 ‘훈제’란 말 때문에 잘 알겠지만 '연기를 쬐다'는 의미이다. 불냄새를 옷에 쐬고나면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몸에서 탄내가 나는 것 처럼, 가랑비 이슬비에 옷이 젖는것과 같이 '은근'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돈’과, ‘훈’이란 표현을 붙여놓아 함께 있는 것은 참 묘한 조합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요건 독자들께서 풀어야 할 화두인 것으로 하자.


<매트릭스>란 영화가 나왔기 때문인지(?) 이제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가상공간이나 시공의 차이가 명확하다고 믿었던 그 옛날엔 지옥이 어떤 공간에 실재로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한 때 참 많았다. 가본적이 없고, 누군가가가 보았다 하더라도 돌아와서 말해주지를 않았으니 있는지, 없는지, 어떤 모양인지 알 도리가없다. 또한알 수없는 차원의 영역이니 우리 기준으로 있다거나 없다고 잘라서 표현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신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것 은 다양한 세상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세계가 있다고 믿든, 없다고 생각하든 그건 자유이고, 그 자유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런데 그런 세계가 있고, 나는 죄를 많이 지었으니 그곳을 어떻게 피할까를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그러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면 지옥이란 그 사람에게는 존재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알 수 없는 지옥을 피하기 위해, 정말 피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는 기도를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살아있는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고, 살아있는 자신의 오늘을 만족감으로 채우는게 더 낫지 않을까. 다양한 세상은 어쩌면 우리의 현실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제 ‘실천’의 부분, '발원'의 대목이다.

我若向刀山 刀山自催折
我若向火湯 火湯自消滅
我若向地獄 地獄自枯竭
我若向餓鬼 餓鬼自飽滿
我若向畜生 自得大智慧
내가 도산지옥에 대한 마음을 내면 칼산이 저절로 무너져 내리고
내가 화탕지옥에 대한 마음을 내면 끓는 물이 저절로 사라져 버리고
내가 지옥에 대한 마음을 내면 지옥은 저절로 말라버리고
내가 아귀에 대한 마음을 내면 아귀들의 배고픔이 사라지고
내가 축생을 향하면 짐승들은 큰 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가 태어나는 다양한 세계 중 가장안좋은곳중세곳인‘삼악도'가 나왔다. '지옥(도산, 화탕)', '아귀', '축생'의 3가지다. 책에는 지옥은 고통받는 곳으로 칼이 산처럼 꽂혀있고 그곳을 맨발로 걸어다니게 하고, 불타고 물이 끓는 화탕이라고 쓰여 있다. 아귀는 배가 고프지만 느린 동작, 산만큼 큰 배, 바늘구멍같은 목구멍의 크기 때문에 계속 배가 고픈 귀신, 그리고 짐승들은 사람과 같은 지혜가 없는 존재라고설명한다. 사실 이런 주장들은 인도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믿던 이야기를 불교가 상당부분 베껴온 것이다.

생각해보자... 천수경은

'죄'의 자성이란 없으니 지나간 죄에 대한 그 무거운 죄책감을 버리고 뉘우치고 다시는 누군가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 된다.

고 사람들을 달래고 설득하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이런 '권선징악'을 장려하고 더욱이 당신이 직접 나서서

“행동에 조심하고 내말 잘 듣지 않으면 지옥간다”

고 말씀하셨겠는가. "말도 아닌소리!" 3악도니 6도니 하는 다른 차원의 존재여부가 모호한 세상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그 '진실공방'이 아니라 2,000년 동안 발전시키고 여러 사람들이 공감해왔던 문화적인 요소, 혹은 여러 이야기들의 소재가 거기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세상의 존재가 진짜와 가짜란 단순한 도식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 세상에는 지금 이순간 지옥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욕심을 채우지 못하여 고통받고, 지혜가 없어서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실재하기 때문이니.


觀世音菩薩
大勢至菩薩
千手菩薩
如意輪菩薩
大輪菩薩
觀自在菩薩
正趣菩薩
滿月菩薩
水月菩薩
軍茶利菩薩
十一面菩薩
諸大菩薩
南無本師阿彌陀佛

⟪신묘장구대다라니⟫ - 가능하면 ⟪대비주⟫란 제목으로 부르면 더 좋겠지만 - 앞에 나오는 보살들의 이름은 여럿인 것 같지만 대부분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들이다. 그리고 그 각각의 다른 캐릭터들은 6도에 대비된다. 그러니까 천수보살은 지옥을, 여의륜보살은 천상을, 십일면보살은 아수라를 담당한다. 나중에 저 뒤에 나오는 준제보살은 인간을, 그리고 천수경에는 안나오지만 성관자재보살은 아귀를, 마두관음은 축생담당이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이 이것을 6가지 방식의 관세음보살의 존재, 6관음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부동산 중개업도 하고 짜장면 배달도 하고, 도배도 하고, 화물차도 몰고... 어디서나 부르면 나타나는 '홍반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洗滌塵勞願濟海
超證菩提方便門
我今稱頌誓歸依
所願從心悉圓滿
번뇌를 깨끗이 씻고, [고해를] 건너기를
깨달음을 초월하여 방편으로 들어가기를
내이제 [대비주를] 칭송하고 귀의하기를 맹세하니
모두 완전한데 이르기를 원합니다.


'깨달음'을 하도 강조하다 보니, 진리가 아닌 임기응변으로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보여주는 인스턴트같은 것이 '방편'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이미 깨달음을 얻고 유능한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베푸는 능력이 '방편'이다. 그래서 방편이 지류이고, 깨달음이 원류가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뛰어넘어 방편으로 들어간다'는 문장처럼, 성인은 '세상일'에 유능해야 한다. 세상일로부터 떠나서 독야청청하려는 불자는 대승이 아니다. 여기서 門에는 '여러가지'란 의미가 있다.


완전하다는 의미로 '원만'이란 깨달음일 수도 있고, 혹은 깨달음과 방편 두 가지를 다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후자의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 방편이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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