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법성게⟫ 이야기 #10 "초발심시변정각 / 생사열반상공화"

初發心時便正覺 초발심시변정각 生死涅槃常共和 생사열반상공화


다시 시간의 '순간'과 '영원'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표현으로 이 구절이 시작된다. 인도 철학자들의 관념에서 시간이란 한쪽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맞물려 있어서 반복되는 것이다. 아니 시작과 끝이란 말자체를 하나의 회전에서 찾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긴 하다. 그러니 다시 말해 시간이란 '순환'일 뿐이다.

대승불교에서 깨달음의 단계는 기존의 4단계에서 무려 52단계까지 발전했다. 이것은 심리상태와 인격함양을 몇 가지 기준으로 구분해 놓은 것일 뿐이니 사실은 무의미 한 것이기도 하다. 쑥쑥 자라는 아이의 키가 0.1mm까지 자란 다음 다시 0.1mm가 자라는데, 처음의 0.1mm와 다음의 0.1mm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 아 물론 더 미세하게 구분하면 가능은 하겠으나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듯 말이다. 어쩌면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니 하는 깨달음의 순간과 깨달은 이후의 굳혀가는 과정을 두고 시간상의 순간과 점차적 단계도 이 복잡한 단계를 의식하고 나왔을 것이다.

아무튼 이 52단계는 심, 주, 행, 회향, 지 등 각 10개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처음의 단계가 초발심주(初發心住)인데, 키 크기로 말하자면 크기 시작한 처음의 0.1mm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게 52단계 중 출발의 단계이다. 그리고 마지막 깨달음의 단계가 '묘각(妙覺)'이다. 깨달음이란 각에 묘란 수식이 붙은 것은 그냥 각이라고 하니까 허전해서 붙인 그야말로 수식이다. 묘란 글자가 뭔가 이해하거나 해석하기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알 수 있는건 다 버려두고 알기 어려운 것이 뭔가 본질적이고 더 높은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공통된 버릇인 것 같다. 정작 우리가 교주로 믿고 따르는 붓다는 인간의 이성을 그렇게 신뢰했고, 보이지 않는 '본질'따윈 없다고 늘 가르쳤는데 우리는 오히려 그런 '묘(妙)'한 것에 희열을 느끼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다.

아무튼 초발심주와 묘각은 무려 50여 단계의 계급차이가 난다. 이등병이 포스타가 되는 것 보다 훨씬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여기엔 무려 3아승기겁이란 시간이 걸린다고 표현했다. 겁은 산스끄리뜨 깔빠(kalpa)에서 '겁파'로 번역되다가 이젠 겁이란 말로 굳어졌다. 겁에 대해서는 앞서서 설명했으니 얼마나 긴 상상속의 시간인지 알 수 있는데, 아승기도 산스끄리뜨 아샹캬(asaṃkhya)를 음사한 말이다. 샹캬(saṃkhya)는 수란 뜻이고 아는 부정접두어로 수가 없다는 뜻이니까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다는 말이다. '겁+아승기'만 해도 이미 쓸데 없이 너무 긴 시간을 상정했는데 뭔가 그래도 부족했는지 3을 붙였다. 실은 조금 유치한 처사다. 바닷물에 물 3바가지 더 퍼붓는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싶지만서도.

그래서 법성게는 이 구절로 52단계의 공간적인 단계와 3아승기겁의 긴 시간을 일축한다.

"초발심주가 곧 묘각이다"

하지만 의상은 초발심을 시작하면 순간적인 시간과 함축적인 공간을 넘어서 깨달음으로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그 둘을 그대로 두고 그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고만 이야기 할 뿐이다. 시작은 시작대로, 끝은 끝대로 내버려 둔다. 섞으려 하지는 않는다. 순간은 순간이고 영원은 영원이다. 그 둘은 각자 엄청난 차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 곳, 한 순간에서 공존한다.

그리고 한 번 더 쐐기질을 한다. 생사에 끄달린 삶은 중생의 삶이고, 열반은 생사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운 상태다. 모든 중생은 깨달음을 추구하고 그쪽 방향으로 달린다. 3아승기겁동안 달려야 할 52단계는 저 멀리 높은 곳이며 또한 지루하고 혹독한 시간이다. 그러나 중생의 처음 시작이 그대로 부처란, 결국 중생과 부처가 우유와 물이 섞이듯 그냥 엉켜 있어서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뭐 이런 용기를 북돋는 차원의 말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이미 도착점임을 인지 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항상(常)'이란 표현을 썼다.

이미 깨달은 자여, 자꾸 스스로를 중생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난척 하는 사람보다 더 답이 없다. 좀 믿어라 제발. 아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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