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저… 차 한잔 하실래요?" #004 - 차의 특성 감상하기 그리고 태호취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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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울 때 마시고 차가워지면 써지는 독특한 연꽃술잎차와 같은 경우는 사실 그 효능보다도 특성이 훨씬 돋보인다. 차들 각각이 가진 개성들은 차를 마시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를테면 태호취죽太湖翠竹은 물속에서 찻잎이 뜨건 가라앉건 수직으로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가만히 두면 그 미동의 물결 속에서 일렁거리며 서 있는 것이 마치 수초를 보는 것만 같다.


태호太湖는 중국 절강성浙江省과 강소성江蘇省 사이에 있는 큰 호수이다. 많은 수로들이 흘러서 호수를 이루고 있다. 중국의 불교와 도교의 많은 사원유적들이 이 곳에 있다고 하는데 이 호수의 북쪽에 인접하는 도시 무석無錫 이란 도시에서 나오는 녹차가 바로 태호취죽이다.

중국사람들은, 찻잎의 모양은 대나무 잎과 같고, 차를 우린 색이 비취빛의 녹색이라고 그렇게 이름붙였다고 한다. 차가 우러나는 모습이 마치 산 속 의 대밭에 있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니까, 각자 유리숙우에서 우러나는 모습을 봐야 알겠으나 아무튼 낭만적인 설명과 명칭임에는 분명하다.


중국차는 대체로 자사호紫沙壺라고 불리는 붉은 빛이 나는 황토로 만든 작은 차관, 혹은 차호를 쓰는데 바로 이 차관의 산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며, 이 차관의 창시자는 당시 그 곳에 있던 금사사金沙寺란 절의 스님이라고 전해진다. 차가 일상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결코 부정하지 않을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자사호란 중국 도자기 역사의 가장 정점일 것이다.

태호를 중심으로 양선腸羨녹차란 이름의 차를 다시 홍차로 만든 의흥홍차宜興紅茶(양선腸羨 혹은 소홍蘇紅)란 강소성을 대표하는 홍차가 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지 만 필자는 아직 접해본 적이 없어서 그 향은 잘 모르겠다.


드라마 작가가 어떤 배우를 쓸지 작품의 캐릭터와 맞추면서 그려나가듯, 차를 마시는 이들은 이런 차의 자질구레한 특성을 눈여겨 볼 수 있을 때, 또 새로운 장이 열린다.

대개 실리적인 이들은 현실이 돌아가는 판세를 파악하면서, 꼭 새길만 한 의미가 있더라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어떤 것이 없으면 불필요한 것으로 무시하고, 철학하는 이들은 그 원리나 정의를 탐구하다보니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예술이란 장르가 이 가운데서 현실과 이상을 연결해 주는 측면이 있다면, 아마도 그 예술의 대표인 차는 단순히 음료는 분명 아닐것 이다. 차 마시는 것이 예술의 한 장르로 받아들여진다면, 오히려 차를 마시면서 행하는 복잡한 절차나, 몸을 위해서만 마시는 현실적인 측면이란 양자 사이에서 모두 벗어나서 각각의 차가 가진 그 작은 특별함에 관심을 기울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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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젖은 빵의 현실이나, 삼국지에 담긴 정치철학이나 먹어보지 않고 읽어보지 않은 이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과 같이 영화나 소설, 또한 장기나 바둑, 심지어 최근에 나오는 스마트폰 게임까지도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니 ‘인생’이 반영 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며 또한 소우주 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만, 마시는 시간동안 인생의 너스레를 풀어놓을 수 있는 것도 뜨거운 차 한잔에 담긴 스토리와 각각의 차가 가진 그 이야기들 때문일 것이다.


완성도 높은 삶을 살려면 예리함과 무던함을 동시에 가져야 하는데 이는 쉬운일이 아니다. 방법은 이렇다. 느끼는 감각은 인풋input 할 때 예리하면 더 좋고, 아웃풋output 할 때는 좀 무던한 것이 좋다. 사람이 무던하기만 하면 작은 특성을 관찰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 눈치가 없으며 답답하고, 예리하기만 하면 너무 예민해져서 까탈스럽고 피곤하게 된다. 상대 뿐 아니라 대체로 자기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깨끗하고 더러우며, 시비가 분명하고 모호한 것은 사실 좋고 나쁜 것과는 상관없다. 자신이 깨끗하고 분명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선호한다면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깨끗하고 분명하게 살아야 하는데 대체로 깨끗하고 분명함이란 그 가치가 주체가 되고 그 것을 좋아하는 나는 정작 그것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더럽고 모호한 상황을 만나면 불편하고 불안해진다. 그것이 조금만 과해지면 화가나고 병이될 것이다.

차를 마시며 차맛을 모른다면 차가 되어 잔에 담기기 까지의 긴 과정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니 차의 가치가 조금 아깝고, 차맛을 예리하게 잘 느끼면서도 무던함의 덕성이 없으면 그저 입맛이 까탈스럽게 보이게된다. 차를 마실땐 어떤 차라도 가리지않고 즐길줄 알지만 동시에그 가각의 특성에 대해서 잘 관찰하고 구분지을 줄 알면 훌륭한 ‘애처가...’ 아니 ‘애차가’일 수 있겠다.


그래서 한중일 삼국의 불교에서 수행은 차에 많이 비유되었는데, 바로 한 가지는 마음을 가라앉혀 무던 하게 하는 것을 정定, 혹은 지止, samatha라고 하고, 그 차분해진 상태에서 차맛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을 관觀, 혹은 혜慧,vipassana라고 비유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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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uce_ 불식(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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