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저… 차 한잔 하실래요?" #003 - 연잎, 연꽃술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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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_현담


(#2에서 계속)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독특한 연꽃차 제다법이 있다. 큰 연꽃을따서 그 안에 향이 좋은 녹차를 넣고 다시 꽃잎 을 모아서 실로 묶는다. 그리고는 랩에 여러번 싸서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마시는 것이다. 그 때 부드러운 연꽃향과 녹색의 풀향가득한 녹차가 어우러지면 그 빛과 향은 그야말로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일찍이 어느 산문집에서인가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이 한국식 연꽃차 제다 방식을 소개하면서 좀 잔인한 면이 있다고 지적한 바가 없지않지만, 꽃에 대한 미안한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했으므로 넘어가는 걸로.

꽃을 천천히 녹이고 큰 꽃잎을 크고 넓은 그릇에 펼치고 물을 부어두면 조금씩 우러난다 대개 꽃은 성인의 손바닥보다 더 큰 꽃을 쓰는데 이는 대만사람들이 마시는 황련보다 훨씬 크다. 넓은 그릇에 꽃잎을 완전히 펴고 물을 부어 우린다음 국자로 떠서 잔에 부어서 마신다.


그래서 깊지않고 커다란 그릇도 있어야 이 차를 즐길 수 있다. 차는 그 빛色과 향香과 맛味을 차례로 본다는데 특히 그 모양에서 이 연꽃차는 다른 차와는 완전히 다른 멋을 보여준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맛있는 음료수를 마시는 행위에 불과한 것은 아니니까 실은 차를 마시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 만큼의 멋이 좀 있어야 하는게 맞을 것이다.


간혹 차마시는 시간이, 오늘날의 바쁜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실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정적이 흐르는 한적한 시간은 심신을 잠깐 쉬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이미 갖고 있어도 잘 모르고 있던 잠재력이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가끔 누구와 함께든, 혼자든 차를 마시는시간을 통해 잠깐 멈출수도, 물러 설 수도 있으며 그것은 분명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

대개 우리는 그 ‘멈춤’을 견디지 못한다. ‘불안’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편치않음’이란 '발전', '계발', '상승', '직진', '우수' 등 이런 것 만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배우고 익혀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는게 너무 과열되어 있다. ‘느리게 걷기’, ‘슬로우 푸드’, ‘저속성장’, ‘멈추면 보인다’ 등등의 목소리가 나올 때가 분명 되었다. 어려울 것은 없다. 있는 그대로만 보면 된다. 문제가 생기면 항상 답도 있다. 걱정은 닥쳐서 하면 될 것이다.


뭔가 ‘불안해’하고‘걱정’이라도 하고 있어야 오히려 ‘안심’이 된다는 부조리한 상황이니 이제 잠깐 차를 마시면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 절실할 지경이다. 누가 그렇게 써 놓은 걸 보았다. 명문이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진다면
걱정이 없겠네


연꽃이 ‘더러운 곳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의미는 어쩌면 가끔 자신의 생각이 확고했을 때 부리는 고집이란 역설적인 의미도 있을 것이다. 옆에서 누가 뭐라하건 내가 믿고 좋아하는 것은 행동에 옮기는 것도 때로는 괜찮을 것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나에 대해 이야기 할까를 마음쓰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대로 해서 문제될게 있을까.


❁ ❁ ❁


선종의 유명한 스님 중 법상이란 스님은, 호가 매실梅實혹은 매화梅花를 가리키는 글자인 ‘대매大梅’였다. 보통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 있지 않지만 선종에서는 꽤나 유명한 스님인데 이분의 스승도 또 유명한 ‘선종 의 망아지’란 별명을 가진 마조馬祖란 스님이다. 마조스님은 6조 혜능스님의 손자제자니까 대매법상스님은 혜능스님의 증손제자인 셈이다. 하루는 다른 제자가 찾아와서

"당신은 스승에게 어떤 가르침을 배우셨습니까"

라고 묻자, 대매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스승인 마조스님께서 내게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고 하셨지”

라고 대답했다. 질문했던 스님은 다시 전했다.

"옛날의 가르침만 배우시고 최근의 가르침은 듣지 못하셨나 봅니다. 요새 스승께서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다시 가르치십니다”

대매법상은 버럭하며 대꾸했다.

“허, 그 영감쟁이가 노망이 들어서 사람들을 막 속이는게지. 난 그냥 계속 ‘마음이 부처’ 라고 생각한다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마조스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매실이 익었구만”

자신이 확신을 가지면 이렇게 스승이 뭐라하든 말든 가던 길 가는 것도 우리전통이다. 때론 그런 자세가 연꽃이 가진 처염상정의 역설적이면서도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 ❁ ❁


연꽃차 만큼이나 대중적인 차의 재료가 연잎차인데 그렇게 잎이 커도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양이 많이 줄어버리는 탓인지 혹은 제다과정이 까다롭고 여려워서인지는 몰라도 그냥 사서 마시기엔 비용이 만만한 재료는 아니다. 또한 그 특유의 풀비린내를 잡는 것도쉬운일이 아니다. 까딱 잘못만들어진 차는 특유의 풀냄새 때문에 마시기 거북해진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연잎차는 마셔보면 금새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효능은 처음 마셔본 사람이라도 금새 여길만큼 강하다. 우리나라는 찻잎도 꽃도 주로 흰 연꽃, 백련을 쓰는데, 불교에서 백련은 붉은 연꽃, 홍련과 함께 관음보살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많은 문화권에서도 공통되는 것이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흰 무채색을 선호해왔기 때문에 그런 전통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연잎차 역시 잎만 보고 꽃 색깔을 맞출 수는 없겠으나 대개 연잎차 역시 백련의 잎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꽃차로 마시든 잎차로 마시든 연차는 독성과 부작용이 거의 없기로 정평이 나 있어 왠만한 사람들에게 모두 권장할 수 있다. 또 낯 선 곳에서 물갈이로 고생하는 사람도 안정시켜 주는 효능이 있다. 여행은 좋아 하지만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연꽃술잎은 대개 잎차와 꽃차가 일반적인 경우라 차로는 조금 낯설지만, 최근 베트남에서 만든 연꽃술잎으로 만든 차를 접해보니 또다른 편안하고 매력이 있다. 물론 긴 밤 잠못 이룰 때 이 차를 따뜻하게 해서 내려마시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연꽃술은 한약재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중국이 워낙 차로 유명해서 차 매니아들도 무심했지만 사실 인도나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차를 만드는데 아주 익숙한 문화권이다. 또한 그 기술로 원래 찻잎이 아닌 것들을 차로 만들기도 잘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베트남 사람들은 차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이들이니 그 전통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연꽃술잎차를 한 번 음미해보자. 그런데 이차는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온도가 내려가면 상당히 쓴맛을 낸다는 점인데, 차가 우러나는 시간도 짧거니와 찻잎을 다 빼내고 둔다고 해도 온도가 내려가면 매우 쓴 맛이 난다. 그러니까, 뜨거운 물을 붓고 차의 색이 살짝 나면, 한 번 빨리 우려서 찻잎을 모두 건져내고 따뜻할 때 얼른 마셔야 한다. 물론 식으면서 쓴맛을 내는 그 변화를 감상하는 것도 나름의 감상포인트가 될 수는 있겠다.


또 하나는 찻잎이 완전히 건조하지 않은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보관을 오래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보관할 때나 우렸을 때나 얼른 마셔주지 않으면 금새 토라지는 어린아이같은 매력이라고나 할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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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_ 불식 15' 09월호 (0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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