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천수경⟫ 이야기 #7 "발원, 다시 속세의 한 가운데서"

천수경 이야기 7 발원, 다시 속세의 한 가운데서

이제 천수경의 마지막 이야기다. 보현보살은 실천을 상징하는 보살인데, 이 보살의 행원이 모두 10가지. 실은 앞에 나왔던 십원이랑 비슷하다. 하지만 보현보살의 10가지 원은 얼마나 불교의 가치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티가 난다. 그러니까 이름은 여래의 발원문이라고 되어있지만, 보현보살의 발원문과 다를게 없다. 그러나 여러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결국 천수경조차도 마지막에는 세상에 나와서 얻은 것을 베푸는데 있다는 것이다. 갖기 위해 얻는 것이 아니라 베풀기 위해서 얻는 것이다.

願我
永離三惡道 영리삼악도
速斷貪瞋癡 속단탐진치
常聞佛法僧 상문불법승
勤修戒定慧 근수계정혜
恒隨諸佛學 항수제불학
不退菩提心 불퇴보리심

저는 원합니다.
삼악도를 영원히 떠나기를
탐진치를 어서 끊기를
삼보를 항상 듣기를
계정혜를 열심히 닦기를
모든 부처님을 항상 따르기를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기를

발원이라는 것은 해달라고 기도하는게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인데, 이 다짐이 조금 어려우니 형식상 부처님앞에서 하는 것이다. 그 래서 “내가 원합니다” 하면서 사실은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모두 운율에 맞춰서 구성되어 있다. 3악도는 지옥, 아귀, 축생, 즉 6도 중 비교적 안좋은 곳이다. 그곳이 싫어서 단순히 안가겠다는 말은 아니고, 수행을 통해 더이상 아래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미다. 인생이란 자꾸 밝고 넓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부처님도 이야기한 바가 있다.


이제 설명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감을 잡으시겠지만, 고통으로 상징되는 지옥, 다툼을 의미하는 아귀, 현명하지 못함을 표현하는 축생의 세계란 결국 내 행동에 따른 것이지 죽어서 가는 곳 은 아니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얻기위해 내는 탐심, 함께 하기 싫은 것과 같은 시공간에 존재해야 하는 괴로움, 이런 챗바퀴도는 삶의 일상을 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인생을 좀먹는 독소와 같다고 3독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3악도’와 ‘3독’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처해지는 현상으로 보면 3악도는 비유로 설명되는 것이고, 우리 행위 3독이니까.


아, 다시 운율이다. 이번엔 불법승 3보, 계정혜 3학이다. 3학의 ‘학’이란 ‘배워야 할 것’을 의미한다. 산스끄리뜨로 ‘아라한’이라고 하는 걸 한문으로 하자면 ‘무학無學’인데, 조선시대 이성계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 맞다. 바로 그 이름이다. 이것은 ‘배움이 없음’이라 ‘무식’과 같다고 여길 수도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이런 뜻이다. 그러니 사실은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선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면 아라한이 된다.


‘계’는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 는 행위규범, ‘정’이란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사물의 본모습을 관찰하는 것 - 명상, ‘혜’란 배움이다. 그리고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게 되기를, 내가 이루고자 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포기 하지 않게 되기를 다짐 한다는 말이다.


'항수제불학, 불퇴보리심’

決定生安養 / 결정생안양
速見阿彌陀 / 속견아미타

반드시 안양국에가서 나기를
빨리 아미타부처님 뵙기를

반드시 안양국에 태어나겠다는 것은 극락에 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극락이란 곳에 꼭 즐거움을 위해서는 아니고 최종목표인 깨달은 이가 되어서 그 세계 의 멤버가 되겠다는 말이다. 극락이란 3계에 속하지 않는, 뒤에 만들어진 좀 특별한 장소이다. 오직 아미타불이란 부처님의 발원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그러니 그곳에 가면 아미타불을 만나야 하고 그날을 고대하니까 “빨리 보게 되길” ‘속견’이다. 극락은 다른말로는 안양安養 이라고 하는데 경기도 안양안양사란 절 이름에서 따온 도시명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안양은 극락과 같은 도시란 의미다. 3악도와 3독을 벗어나고 3보와 3학을 배우고 극락에 가서 아미타불을 만나는 것은 모두 다음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다.


分身遍塵刹 / 분신변진찰
廣度諸衆生 / 광도제중생

몸을 나누어 수많은 세상에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기를


제도해야 할 중생이 많으니 바빠서 몸을 쪼개든지 분신술을 써야 한다. 그래 서 천수천안보살도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수많은 훈련을 거치고 나면 속세로 돌아와야 한다. 중생은 속세에 있고, 그들을 제도하려면 그들 옆으로 오든, 가든 해야할 게 아닌가. 한 곳에 섞여 있으면 누가 중생이고 제도될 대상인가. 결국 불법과 극락과 중생의 세계가 구분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 ⟪천수경⟫의 최종 메시 지다. 스포일러 같지만, 사실은 계속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常住十方佛法僧 / 상주시방불법승
삼보는 모든 곳에 항상 있다


천수경 이야기가 모두 끝났습니다. 천수경 이야기를 구독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회부터는 법성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n4o2cextfpaostdgw6su.png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Join the conversation now
Logo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