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모든 글에 꼭 결론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에요.



#01. 특이한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한 가지 사회 현상을 정한 후,
수업을 듣는 사람들끼리 팀을 짜서 그것에 대해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사안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A4 2장 내외로 글을 쓰는 것이 매주 과제였다.

대체로 많이들 싫어했고 힘들어 했다. 나도 졸업에 필요한 수업이 아니면 안 들었...

아니 어떻게 매주, A4 2장짜리, 깔끔한 글을 쓰란 말입니까...

하지만 어차피 듣기로 한 수업이니, 비루한 내 글쓰기 실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지 하고 열심히 하기로 했다.


#02. 억지로 글을 쓰니, 내 글쓰기 실력의 문제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쓸 때, 완전히 ‘기분파’ 다.

꽂히는 글감들을 마구마구 쌓아놓고, 내킬 때마다 조금씩 다듬는다.

왜 이런 버릇이 생겼을까 생각해보니
스펙을 쌓기 위해 일정한 틀과 형식이 있는 기획서나 기사를 많이 써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느꼈던 답답함의 반작용?이 아닌가 싶다.

나름 합리화를 좀 해보자면, 이렇게 글을 묵혀두고 다시 보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비문이나 ‘갑자기 방향이 왜 이렇게 가지?’ 하는 부분이 보여서 그래도 최악의 글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한 두 번이지, 매주 쓰다 보니 (근본이 없는 내 표현으로) 소위 글빨?이 딸리기 시작했다.

밑천이 다 드러나고, 머리는 터질 것 같고, 시작하기도 전에 막막해서 글쓰기가 무서웠다.

가장 큰 문제는 배경지식이 전무한 사안을 다뤄야 할 때였다.

기사나 책을 찾아보고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도저히 답이 없었다.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쓰란 말인가.

나도 모르는 것을 글로 써서 남이 본다면,
‘이 사람 참 글 못 쓰는 구나’ 말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거 되게 위험한 행동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03. 모르면 배워야지, 알려면 물어야지.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떠나시는 교수님을 붙잡고 물었다.

‘교수님 제가 글을 쓸 때, 특히 제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아는 것이 없어서,
어떻게 생각을 풀어내고 결론을 이끌어 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로 시작한 질문은
어느새 미흡한 글쓰기 실력을 고백하고 인생 상담을 하는 분위기가 되어있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교수님은 한 마디로 내 고민을 없애주셨다.



‘더덕학생. 모든 글에 꼭 결론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더덕학생이 느끼는 고민과 생각, 그 자체로도 좋은 글이 될 수 있어요.’


#04. 아...

그리고 교수님은 점심약속 때문에 다른 건물로 떠나셨다.

생각해보니 칼럼을 쓰라고 한 것도 아니고, 논문을 쓰라고 하신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 생각 다듬으면 되는 것을,
나는 자꾸 결론을 내려하고 있었다.

특히나 이런 자유로운 형식의 글이라면,
그냥 고민하고 생각하는 그 자체를 적으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스팀잇 속 이런 저런 글들을 보다보니
이곳에 있는 막연한 생각, 고민, 일상들이 적어도 내게는 모두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필자처럼 글쓰기 실력이 부족해 고민하는 분들에게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모든 글에 꼭 결론이 있어야 되는 건 아니라는 점.

부족한 어휘와 어색한 문장일지라도,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담아낸 글은 모두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도 있으니 힘내시라는 점.



아. 표절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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