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1 다들 그렇게 마음먹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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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생각이 떠오른 때는 아주 평범한 오후였다.
내가 무언가 잘못을 하였고, 그전까지도 나에대해 인식이 안좋던 차에 쓸만한 트집을 잡은 주대리가 대차게 화를 냈다. 주대리에게 한참 혼나고 있을 때 그런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진짜 나가라고 하면 어쩌지?

만약에 억울한 상황이었다면,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가득찼겠지만 나는 쉽게 납득했다.
실제로 내가 저지른 실수고 입장을 바꿔보면 화를 내는게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물론 디테일하게 주대리의 언행을 분석하면 기분 나빠할만한 요소는 충분히 있다지만
크게 봐서 어쨌든 내가 잘못한 일이고 그 이유로 혼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대리의 인성이 어떻고 태도가 어떻고는 대마가 아니다.
그가 얼마나 불쾌한 사람인지는 관심이 없달까

멘탈이 너덜너덜해져서 자리에 와 앉으니 그 공포가 좀 더 현실처럼 다가왔다.
문득 두려울땐 직시하게된다.
만약에 잘린다면 어떻게 되는걸까. 당장 그 다음날 부터의 생활은? 주변의 시선은? 나의 미래는?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다 정말 거짓말 처럼, 문득 그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건 그 뿐인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그거야 말로 내가 바라는 길이었던 것이다.
나는 1년 이상을 버틸만큼 모아둔 돈이 있었고 지금 하는 일이 내 적성과 멀리 떨어져있다는건 지난 3년간 매일같이 느껴온 일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다. 라는 섬찟한 문장을 기억한다.
나는 죽기전에 해야할 것들이 정말 많다.
세계여행도 해보고 싶고 글 쓰는 일에 원없이 매진해보고 싶기도 하다.
세상은 내가 보고싶은 영화 책 드라마 같은 것들로 가득차있고
아직 내겐 부양할 가족도 갚아야 할 빚도 없다.
무엇보다 아직 나는 지금껏 단한번도 내게 여유있게 넉넉한 시간을 허용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매일매일이 휴일이고 나는 이제 그걸 실현하려고 한다.

거짓말 같겠지만 이게 퇴사를 결심하게 된 첫번째 계기였다.
다들 이렇게 큰 사건 없이 우연히 마음 먹게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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