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안경 낀 에이스의 전설-#3

두 번째 이야기는 선동렬과의 라이벌일화입니다.
한국인 중 누가 가장 실력이 뛰어난 투수냐는 질문은 여러 가지 대답으로 갈릴 수 있지만, KBO에서 가장 강했던 투수를 뽑으라면 야구팬의 9할은 선동렬을 뽑을 것입니다.
최동원의 팬인 저조차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선동렬의 일생의 라이벌은 최동원이었습니다. 둘은 항상 서로에게 비춰지며 공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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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최동원은 영남을 대표하는 투수 였고 광주 출신의 선동렬은 호남을 대표하는 투수였죠. 최동원은 연세대 였고 선동렬은 고려대였습니다. 최동원은 졸업 후 실업팀을 거쳐 자연스럽게 롯데로, 선동렬은 졸업 후 해태로 갔죠.(모기업끼리도 제과점 라이벌이라는 아이러니)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지역감정이 강하던 시기라서 팬들 사이에서 기싸움도 장난이 아니었죠. 커브볼이 주무기인 최동원과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선동열.
누가 뭐래도 그 시대의 영웅은 이 두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KBO에는 팀이 여섯 개 밖에 없었지만, 둘의 선발 맞대결이 성사되는 일은 쉽지 않았죠. 혹사와 무법칙의 시대긴 해도, 엄연히 선발 로테이션이란게 존재했으니까요.

하지만 양 팀의 에이스가 영원히 엇갈릴 수는 없는 법이죠. 둘은 커리어 동안 세 번의 선발맞대결을 펼칩니다. 각 지역을 대표하던 이들의 대결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죠. 세 경기 모두 역사에 남을만한 명승부였고 자존심 싸움이었습니다. 광주일고와 경남고, 광주와 부산. 영남과 호남, 백제와 신라(?). 연대와 고대, 롯데와 해태의…. 둘은 마운드 위에서 자신이 대표하는 것들을 홀로 짊어진 채 싸웠죠. 세 경기 모두 구원투수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완투,완투,완투. 아마 감독들과 선수들도 이 둘이 가지는 상징성을 알기에 감히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 생각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86년 4월에 펼쳐진 첫 경기는 1:0으로 선동열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두 달 후에 펼쳐진 두 번 째 경기는 2:0으로 최동원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렇게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그들에게 이듬 해 운명은 전설이 될 세 번째 경기를 허락합니다.

선수, 팬, 기자 할 것 없이 모두가 고양된 채 기다린 이 날의 대결에서 둘은 연장 15회까지 이어지는 혈투 끝에 209구 232구로 완투하며 2:2 무승부를 기록합니다. 둘의 투구 수도 가히 미친 수준이고(당연히 깨지지 않을 기록입니다) 경기 내용도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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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초, 최동원이 1사 만루를 실점없이 막아냅니다.
11회말, 선동렬이 2사 만루를 실점없이 막아냅니다.
12회초, 최동원이 무사 1,2루를 실점없이 막아냅니다.
12회말, 선동렬이 1사 1,2루를 실점없이 막아냅니다.

결국 모두가 인정한 백중세. 둘의 승부는 그 정도로 완벽했죠. 이 날의 승부는 훗날 조승우와 양동근이 주연한 영화로 제작되기도 합니다. 저는 아직도 이 영화의 실패 이유가, 너무 영화 같은 시나리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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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간의 주목을 받는 라이벌인 둘은 사실 사석에선 술도 같이 할 정도로 친했다고 하죠. 지난 2011년 최동원이 별세했을 때도 선동열이 급히 달려와 어머니 김정자씨를 위로하고 빈소를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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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라이벌은 경쟁을 넘어 서로를 완성해 간다고 하죠.
실로 두 사람은, 이 문장이 가장 어울리는 이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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