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아아아아) 미션임파서블-. 뒷마당에 물주기

"퇴근하고 와서 한번만 주고 자-!"
할머니께서 추도예배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신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없는 하룻밤이다. 월요일날부터 좀 몸이 시름시름해서 정신없이 집에 오게 되었는데, 할머니께서 출근하기전에 당부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요새는 해가 쨍쨍해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뒷마당의 밭에 물을 줘야 하는데, 하루정도 집을 비우시니까 저녁이라도 물을 꼭 줘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할머니의 밭을 좋아한다. 밥을 먹을때 할머니께서 밭을 가꾸시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면, 하나의 모험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밭의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니..!! 막중한 물주기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전부터 물을 주고 싶기는 했었는데, 아무래도 상추나 고추등의 식물들에 나의 마이너스 손이 닿으면 망할까봐..항상 소심하게 물을 주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단독으로 밭에 물을 주게 되다니?

그런데 퇴근하고 돌아온 날, 한밤중에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마당이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귀뚜라미와 곱등이가 도사리고 있는 할머니의 지하실 입구를 지나서, 뒷마당으로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는 벌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무서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곱등이나 귀뚜라미 종류는 너무 무섭다. 아니..사실 폐쇄된 공간에서 만나는 벌레를 무서워 한다. 나와 벌레가 한 공간에 있다는것 ㅠㅠ..(야외의 숲이나 바다, 산에서 만나는 벌레는 그렇게 징그럽지 않은데 말이다.)

용기를 내어, 마당밭으로 가는 뒷문을 열었는데, 이미 귀뚜라미와 곱등이가 야밤에 운동회를 하듯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 그냥 내일 출근하기전 일부로 일찍일어나서 새벽에 물을 주리라!
공포에 떨면서 잠이 들었다. 할머니를 보고싶어하면서...


새벽은 고요하다. 아니 사실, 새벽은 고요한데 나의 마음은 항상 다급하다. 한정된 시간에 나는 항상 늦은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집을 박차고 나와야 하니까. 그런 급한 나를 항상 아침이라도 챙겨주실려고 하는 할머니... 하숙하고 있는 신세인데 정말 귀한 사람 대접받는다. 그래서 언제나 과자를 사들고 집에 들어가는 이유랄까? 하여튼, 그날 아침도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손길이 묻은 앞마당에 나가보았다. 다행히 뒷마당으로 지나는 통로인 지하실입구쪽에는 곱등이와 귀뚜라미의 흔적은 없었다. (정말 안심했다.) 할머니의 앞마당은 어렸을적부터 나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아끼던 장독이 깨졌을때, 내가 한짓이라고 억울한 누명을 쓰기는 했었지만, 그런 악추억 말고는 하루종일 신나게 놀았던 놀이터였기도 했다. 상추들이 다행히 말라비틀어지지는 않았다. 물을 떠서 주려고 하는데, 물 뿌리개가 글쎄 다 깨져있더라. 그래서 물을 떠도 다 새버려서, 물주기가 아주 불편했다. 꼭 퇴근길에 할머니한테 커다란 물뿌리개를 선물하리라 다짐했다.


할머니가 요새 풍년이라는 상추들. 매번 상추수확에 실패하셨다는데, 올해들어 상추가 아주 잘생기게 났다고 자랑하시더라. 너도 우리 밥상에 들어올 상추들인가?!! 할머니 말씀대로 잎을 조금씩 피해서 흙속에 열심히 물을줬다. 나름 물주기가 은근 힘이 들더라.



요근래 공사관련해서 할머니가 막 불이나셔서 말씀하셨던 문제의 벽. 여기가 하자보수가 많은데 제대로 처리를 안해준다나? 나는 이 벽을 좋아한다. 뭔가 멋들어진 모양의 벽이랄까?

물을 주다가 멍을 때렸다. 뭔가 아침에 일어나서 식물에 물도 주고, 내가 되게 대단한 소녀가 된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날은 똑같이 늦은마음으로 준비는 한것같은데, 출근길 언덕을 올라가면서 뭔가 늦장과 여유를 부린것 같았다. 나름 양배추도 달여서 바나나랑 먹었고, 할머니가 끓여주시고 가신 된장국도 마시고 갔다. 어느새 예쁜 장미와 꽃들이 폈던 담벼락이 저렇게 예쁘게 시들었구나. 늦봄에서 이제 여름이 오는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날 돌아오신 할머니께서 낮에 비가 내렸냐고 물으셨다. 아침에만 물을 줬는데도, 상추들이 말라비틀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있더라고. 하루 안봤는데 훌쩍 커버렸다고. 오랜만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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