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브런치, 그리고 스팀잇

소셜 미디어. 처음 나왔을 땐 정말 '놀라운 신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2007년 처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그때는 기술을 좀 알면 태터툴즈나 워드프레스로 직접 블로그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서 블로그를 썼다. 워드프레스는 영어로 작성하면 제법 '빠다 냄새'나는 블로그가 탄생하지만 솔직히 한글이 얹히면 양복 입고 한식 온돌방에 앉은 것 같은 불편함이 있었다. 나는 물론 티스토리로 시작했다. 아무리 IT 기자 출신이라고 해도 블로그를 "설치형"으로 쓰기에는 문송했기 때문에 워드프레스나 태터툴즈는 엄두를 못 냈고 그렇다고 네이버, 다음 등 포탈 블로그를 쓰자니 어딘지 촌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진짜 그땐 그랬다). 이글루스는 '블로고스피어'라는 단어에 진짜 잘 어울리는 덕후들이 많아서 기웃거리는 재미가 있었으므로 그곳에도 자리를 한 자락 만들었다. 나중에는 SK에 인수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점점 엣지가 사라졌고 나는 로그인 아이디를 잊었다.

그때는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다음을 비롯해 다른 블로그 플랫폼에서 운영되는 블로그는 검색이 잘 안되던 시기였다. 네이버 블로그를 보려면 네이버에서, 티스토리는 티스토리에 이글루스는 이글루스에 각각 흩어져서 별도로 글을 읽어야 했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메타 블로그 서비스인 올블로그와 블로그코리아가 등장했다)

블로그 처음 할 때는 이런 신세계가 있을까 싶도록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지개처럼 신기하고 설레었다. 기자, 방송작가 출신 글빨 블로거들의 명쾌한 트렌드 해석과 전망, 군의관을 하는 의사 선생님이 직접 블로그를 통해 알려주는 건강 의학 상식, 평범한 주부들이 건네는 초간단 저녁 요리 등등 어떤 미디어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콘텐츠가 올라오는 곳이었다. 비록 글을 써서 먹고사는 직업에 있었지만 나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올블로그 메인에 인기글로 내 블로그 글이 올라오는 날이면, 그 추천 수와 쏟아지는 댓글에 중독된 듯 5분 단위로 새로고침을 해대기도 했다. 그 정도로 빠져 있었으니 하던 일 접고 소셜 미디어를 진짜 내 업으로 삼게 됐다.

이후 트위터가 등장하면서 140자의 영향력을 가진 스타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외수 소설가, 빌 게이츠 등 전 세계 유력인사의 생각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고 카페에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트위터 맞팔 친구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영향력의 무게로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드니 곧 물리고 말았다.

(페이스북으로 넘어가기 전, 네이버에 인수된 후 자취를 감춘 미투데이라는, 트위터 비스무래 서비스가 있었는데 온라인 친구들끼리 댓글놀이하며 놀고 번개 하기에는 정말 최적의 SNS였다. 낯가리는 나도 이때 번개 꽤나 참석했었다.)

페이스북이 등장하면서 소셜 공간을 평정하는 동안 온갖 아는 사람들이 페이스북 공간에 모여드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학 동창, 십 년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 스치 듯 명함을 나눴으나 잘 몰랐던 지인들의 딸 자랑, 고민, 허세, 푼수질, 다 보고 좋아요 누르다 보니 오랜만에 만나도 근황을 모두 알게 되었다.

페이스북은 친구들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이제까지는 없던 가치를 주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도 가족들과 함께 만나는 사이가 되면 오래 우정이 지속된다고 한다. 페이스북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었던지...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짧은 생각과 일상의 단편들이 나타났다 휘발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다들 시들해질 즈음 브런치가 나타났다. 회원가입 후 브런치 팀의 승인을 받아야 글을 쓸 수 있고 '작가' 대우해주는 이 고고한 서비스가 마음에 들어 잠시 머물다... 운영하던 티스토리를 접고 이 곳에 터전을 잡았다. 깔끔하고 좋은데 댓글도 안 달리고 좀 심심하다. 브런치 팔로워가 적어서 그렇겠지만 SNS에 공유하지 않은 글은 조회수도 바닥이다. 아 심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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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스팀잇이 등장했다. 블록체인이라는 긱(Geek) 스런 수사가 붙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좋아요'(=보팅)를 돈으로 환산해서 암호화폐를 보상으로 주는 서비스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보상을 직접 암호화폐로 준다니...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해서 써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빠져들고 있다.

스팀잇 솔직히 UI 너무 후지다. 딱 미국 서비스 같다. 국내 포탈 서비스 덕에 아기자기한 소셜 미디어에 익숙해진 나 같은 사용자들에게는 진짜 짜증 날 만큼 못생겼고 덤덤하다. 게다가 뭐 그리 공부할 게 많은지. 암호화폐를 이해하는 것도 힘든데 '스팀'이라는 암호화폐 기반이면서 스팀 파워라는 개념도 있고 스팀 달러라는 것도 있다. 백서를 읽어보니 처음 시스템을 설계한 그룹의 고민이 배어 있다는 생각은 든다. 사람들이 쉽게 이 커뮤니티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스팀이라는 암호화폐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깊은 뜻은 사용자들이 몰라도 되도록 설계해야 좋은 서비스지. 어쨌든 스팀잇은 조금은 불편하고 어색하고 낯선 곳이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본연의 '커뮤니티 속성'이 잘 살아 있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꾸준히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고 서로의 글에 보팅 해주며 격려한다. 댓글도 엄청 달린다. 댓글에서 진지한 토론도 일어나고 번개도 번쩍한다. (물론 가끔씩 싸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주 쉽게 스팀잇에서 만난 친구들과 공동 작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스팀잇은 캠핑장 같다. 집이나 호텔에 비해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자연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공간처럼 소셜미디어 본연의 특성이 따뜻한 공기를 가득 메우는 곳이다.

그래서 당분간 스팀잇에 자주 출몰하며 십여 년 전 소셜 공간에서 느꼈던 무지개를 다시 발견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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