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확실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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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 hygge | lagom | au calme | 小確幸(소확행)


단어도 국적도 다르지만 결국 전부 같은 말이다.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이 있는 삶



사실 뭐 주변 사람들에 비하자면 크게 바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업무에, 출퇴근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인데다가, 사는데 큰 지장이 없으니 그다지 큰 걱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전만해도 나는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가족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아주 많았다. 소위 부자동네라고 불리우는 동네에 살며, 엘리트라고도 볼 수 있는 그런 출신학교와 직업들을 가진 가족,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웃으며 매너있게 행동해야하는 정기적인 모임들. 그런 것들에서 도망치고 싶어했고, 부모님이 정해주신 루트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응원은 커녕 반대를 무릅쓰고 내 길을 개척해나가야하는 삶이었다.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굳이 상세하게 쓰지 않기로 하고ㅡ 결국 나는 2015년 1월에 부모님의 지원 없이 독립을 하게 되었다.

현실적인 삶을 맞이하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돈은 제법 모아뒀지만,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작은 돈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자 혼자 살기 위험하지 않은 쾌적한 동네에 집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기숙사말고는 혼자 산 적이 없다보니 집을 보러 다닐 때 뭘 중점적으로 봐야하는지도 몰랐고, 쓸데없이 귀하게 자라서 주택가에서 사는 것이 위험해보였다. 어찌저찌 집을 알아보다가 회사가 신분당선을 타고 가면 좋은 곳에 있어 정자역 근처 한 주택에서 첫 독립을 시작하게 되었다.

독립 후의 나는, 그야말로 집순이가 되었다. 이제 굳이 집을 나가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니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는데 정작 나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할 지 몰랐다. 수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뭐 하나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갑작스레 공과금과 월세를 내야하는 내 처지 때문에 뭔가 심적 여유가 없어진 것도 한 몫 했으리라. 어느새 나는 어두운 공간과 고요함에 익숙해져갔고, 가끔가다 나오는 바깥 산책도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까지만 했다. 주변 친구들이 내가 조금 어두워진 것 같아 걱정을 하던 즈음에, 우연히, 집 앞에 새로 생긴 가죽공방에 발을 들였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첫 제자를 맞이한 선생님은 구두칼로 가죽을 잘라내는 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내내 4시간씩 시간을 내어 수업을 듣는 것은 직장인으로서는 제법 큰 퍼센티지를 할애하는 것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내게 확실히 즐거움을 주었다. 수업시간에 나밖에 없으니 시끄럽지도 않고, 어렵더라도 내가 디자인한 가방을 만들어냈을 때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었고, 새로운 스킬이 생길 때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났으며, 작업하면서 선생님과 마음 편하게 대화하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1년이 넘도록 가죽공예에 푹 빠져 살았다. 엄지손가락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공방에서도 집에서도 가죽공예만 했다.

가죽공예는 내가 나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주었다. 예전의 나는, 언제나 집에서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냈었다.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나를 버틸 수 있게, 혹은 정신을 다른 곳에 팔릴 수 있는 취미를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취미로 DJ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어쩌다 시작한 가죽공예로부터 진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에게 귀기울이기 시작했고, 30년이 넘어서야 내가 조용한 공간과 식물을 좋아하고 생각보다 청소에 예민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타의에 의해 이끌리거나 벗어나고 싶어서 하는 행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건 그저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의한 회피이고, 다른 것을 하느라 현재의 괴로움을 잠시 멈춰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온전히 돌이켜본 후 진짜 나를 알게 되어 내가 진짜로 마음 속에서부터 좋아하는 것을 찾고나서야, 바쁜 일상 속에서도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 같다.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를 때가 많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나에게 귀를 기울여본다. 더 많이 즐거워지기 위해-


p.s. @kyunga 님의 마크다운 리소스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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