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클럽 공모전 참여] 조금은 낯선 일기.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가로등을 멍하니 쳐다보던 사람이 비어있는 벤치를 쓰다듬던 사람을 만난다.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의 등판을 쫓는 사람이 자기와 익숙한 어깨를 가진 사람과 만난다. 어느 한 쌍은 눈길을 떼지 못해 손을 잡았다고 한다. 또 다른 한 쌍은 손을 놓지 못해 눈길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일방적으로 끝난 관계에 대해 누구는 버렸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잊었다고 한다. 그들의 옆을 지나가던 고양이는 버려지는 것과 잊히는 것의 차이는 없다고 말하고 위태로운 난간위로 가볍게 점프 한다.   

건강한 아침에 일어나 기분 좋은 기지개를 펴고 신선한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고 싶었다. 말끔하게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 까지 해야 할 일들을 척척 마무리 하고 집에 돌아와 뜨거운 샤워로 피로를 녹이고 싶었다. 보글보글 끓는 국에다가 파를 송송 썰어 넣어 소박한 저녁상을 야무지게 비우고 푹신한 침대에서 내일을 기다리고 싶었다.    

만약 위와 같은 날을 보냈더라면 황금빛 잠에 빠져 궁상맞은 일기를 굳이 써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낮에 쓰는 일기와 밤에 쓰는 일기는 참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일기를 쓸 때엔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직선의 시간 방향으로 찬찬히 훑어갔는데 나이가 들어서 쓰는 일기는 말도 안 되는 가정법과 불분명한 넋두리가 가득한 것 같다. 가만 보면 내가 일기를 쓰는 것인지, 자아를 성찰하는 것인지, 소설을 쓰는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인터스텔라를 답습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생각과 감정이 이끄는 데로 끼적이다 보면 일기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남루한 글 한 페이지가 완성된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기분 좋은 기지개는커녕 새벽 4시쯤에 깼다. 잔잔할 줄로 알았던 봄비가 내 창문을 부수는 줄 알았다. 찌뿌듯한 몸을 뒤척이다 겨우 다시 잠에 들쯤에 알람몬에서 피코가 우렁찬 꼬끼오를 울어 대는 바람에 다시 일어났다. 정말 들을 때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어플이란 생각이 든다. 둘이서 야식을 같이 자주 먹었던 외국인 룸메가 매번 알람이 울릴 때 It's obnoxious(굉장히 불쾌하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나 피식 웃었다.     

그 이후론 하루가 평소와는 어떻게 달랐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냥 저냥 마무리를 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적잖이 피곤해 보였던 모습과 비가 와서 그런지 그래도 조금은 더 숙연하고 깨끗한 느낌만이 남아있다.   

요새 들어서는 사람들 구경을 많이 한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게 사람인 것 같다. 사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대부분의 고민들은 돈 혹은 관심 이면 해결되는 단순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서브텍스트(subtext)를 들여다보면 돈과 관심도 상당히 난해한 것 같다. 이외에도 끊임없이 자문하는 사람, 매일 손톱을 다듬듯 자신의 살점을 갉는 사람, 스스로를 햇볕에 말려두어야만 하는 사람  등 복잡하고 미묘한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구체적 골격이 없는 변화들과 끝내 손가락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공통성을 찾고, 그들을 아우르는 모종의 법칙들을 찾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kimthewriter님의 공모전에 힘입어 일기를 쓰기 전 지난 날 썼던 일기들을 다시금 되돌아보았다. 문득 지금 품고 있는 상념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할까 궁금해진다. 그래서인지 시간에 소실되는 미묘한 느낌들과 생각들을 최대한 많이 담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다 쓰고 나니 정말 두서없고 볼품없지만 정말 나의 것인 글 뭉탱이가 완성이 되었다.    

이 공모전의 테마는 일기이다. 일기는 누군가의 발자취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아닐까 싶다. 으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여태껏 발자취를 남기지 않으려 신발을 정말 오랫동안 신어 왔는데 오늘 만큼은 감사하게도 부드러운 백사장위로 맨발로 맘껏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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