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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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이 있어 잠깐 지방에 내려왔다. 이렇게 먼 이동이 있는 날엔 다른 일정이 없어 오히려 휴일 같은 기분이 든다.

잠깐 잠에서 깨 창문을 봤는데 숨이 탁 트였다. 당장 차를 세워 내리고 싶을 만큼 청량했다.

백수 일기를 쓰던 적에 지금이 좋은 때라는 글을 자주 썼던 것 같은데, 오늘 창밖의 푸르름을 보면서 지금이야말로 진정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보면서 삶은 365일 내내 좋은 때인데, 내가 언제 인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2

토요일부터 목이 아팠다. 스팀시티 녹음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 게 화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계속 잠을 설쳤다. 늦은 새벽에 잠들어 이른 아침에 일어나거나, 낮잠을 다섯 시간씩 자곤 했다. 불규칙한 수면 탓에 머리도 같이 아파졌다.

머리가 아픈 건 잠을 자면 해결될 거라 생각했고, 목이 아픈 건 노래를 안 하면 괜찮아 질 거라 생각했다.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며칠을 보냈다. 유독 머리가 아팠던 날, 혹시 나 감기 걸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기 증세와 같았다.

감기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린 순간부터 몸이 못 견디게 아프기 시작했다. 갑자기 열이 나고, 계속 누워만 있고 싶었다. 어제는 양해를 구하고 합주 중간에 집에 와 쉬었다. 그래놓고는 늦게까지 컴퓨터를 붙잡고 있었으니 이게 진짜 아픈건지 꾀병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몸에서 열도 나는데 감기 때문인지 날이 더워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3

일을 보기 전에 잠깐 지인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직접 꺾은 꽃을 선물로 주었다. 받는 순간 너무 좋아 소리를 질렀다. 자기가 있는 곳엔 이 꽃이 무척 많다며, 물에 담가 놓으면 금방 살아난다고 했다. 잠깐 꺾인 꽃에게 미안했지만, 포장 하나 없는 이 꽃다발이 너무 좋아 계속 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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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함께 간 카페는 참 예뻤다. 손님 없는 한적한 카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방에 내려온 이유는 그다지 즐겁지 않은 일 때문이었지만 이 시간 때문에 즐거운 기억이 됐다. 목이 아파 차가운 커피 대신 따뜻한 차도 마시고, 목소리도 평소 보다 낮춰 이야기 했다. 조곤조곤 나누는 대화가 좋았다.


5

요즘은 여러 일들로 마음이 힘들었다. 일 때문에 곡을 써야 했지만,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작 의뢰자들은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그 곡이 세상에 나가게 됐다. 스스로는 크레딧에 이름을 빼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로 싫었고,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이런 곡이 좋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들'

실은 그들을 미워한 게 아니라, 나를 미워한 것이다.

6

그러던 와중 며칠 전 올린 스팀시티 응원가에 달린 @realsunny님의 댓글을 보게 되었다.

앗 너무나 예상못한..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어요.

갑자기 왜 이 댓글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짧은 한 줄에 깊은 위안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그 글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보며 '이런 게 좋다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것보다는 죽을 것같이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다)

누군가에겐 짧게나마 아름다운 음악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열심히 만들 돼, 적어도 그 평가를 스스로 내리진 말자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부끄러운 음악을 만들겠지만, 그래도 멈추지는 말아야지.

7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급하게 화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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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U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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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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