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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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the writer










   띠띠- 띠띠-
   손목시계의 알람이 귀에 거슬린 지 한참이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 않고 있었다. 시계는 아일랜드 위에 있었고 젖 달라고 우는 아기처럼 지칠 줄 몰랐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승부는 결국 시계의 승리로 돌아갔다. 포스로 알람을 끄기에는 수련이 한참 모자랐다.

   “알았어, 알았다구.”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일랜드까진 고작 세 발짝이었지만 세 블록을 걷는 것보다 멀게 느껴졌다. 가까이 갈수록 알람은 더 크고 또렷하게 신경을 자극했고, 그에 따라 불쾌감은 더해 갔다. 나는 손목시계를 낚아채 알람을 끈 뒤 소파 위로 내던졌다. 망할 놈의 시계는 퇴원 당일 지미가 준 것으로 버튼이 잔뜩 달린 계산기 타입의 모델이었다. 지미가 내게 그걸 준 건 녀석이 시대착오적인 인간이어서가 아니다. 물론 지미가 시대착오적인 인간인 건 맞는데 이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 시계는 꽤 오래전, 사고를 당한 이듬해인가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지미가 내게 준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게 아직도 있는 줄 몰랐다. 지미가 그걸 선물이랍시고 줬을 때 나는 당장 치우라고 불같이 화를 냈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눈꺼풀을 깜빡여서 만든 문자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았으나 어쨌든 그게 먹혔는지 그 후 두 번 다시 못 봤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긴 세월 동안 그걸 버리지 않고 있었다니, 나는 지미의 쓸데없는 집념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시계는 소파 위에서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그 시계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시대착오적인 외관을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 없었다. 사고 당시, 나는 계산기 시계를 잃어버렸다. 손목에 멀쩡히 차고 있던 놈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큰 규모의 사고였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아버지에게 받은 생일 선물이었다. 나는 <백 투 더 퓨처>에 빠진 흔한 어린애였고 마이클 J. 폭스의 모든 걸 탐냈다. 드로리안은 언감생심이었지만 캠코더와 스케이트보드는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계산기 시계도 그중 하나였다. 지미는 마치 그게 사려 깊은 행동이라도 된다는 듯 같은 시계를 선물했으나 그건 손 하나 마음대로 들어 올릴 수 없는 처지의 나를 약 올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서 다시 그 시계를 준 건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실용적인 면도 고려한 것이었다. 여덟 시간마다 한 번씩 약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기 전에 한 번, 일어나서 한 번, 중간에 한 번.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묻자 지미는 자신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라고 했다. 결국, 평생 동안이라는 말이었다.

   평소라면 약을 먹고 한숨 더 잤을 것이다. 약의 부작용 중 하나다. 신경안정제 수준으로 졸린 건 아닌데 뭐랄까, 볕 좋은 날,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오는 나른함 같달까. 무얼 하든 엉망진창이 될 테니 차라리 한숨 자는 게 나을, 그런 상태가 된다. 아, 그게 신경안정제 수준인가. 아무튼 덕분에 약 기운을 머리에서 제대로 몰아낼 요량으로 알람을 끄자마자 침대 위로 다시 몸을 던지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대충이라도 씻고 옷을 입어 둬야 했다. 잠이야 지미의 차에서 자면 그만이었다.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이고 묘소에 가기로 한 날이다. 사고 후 첫 방문이다. 불행히도 이것이 퇴원 후 주어진 과제 중 가장 유의미한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헛된 바람은 캘리포니아 특유의 미풍을 타고 옅어져 갔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이뤄낸 건 고작해야 미디어와 대중으로부터 잊힌 것뿐이다. 쌍둥이의 기적이니 뭐니 떠들어대던 미디어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배우와 가수들의 사생활 얘기로 아까운 종이와 전파와 휴대폰 데이터를 낭비하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다. 지미 역시 그 후로는 더 이상 기적을 이루지 못하고 벽에 부딪혀 있었다. 그래도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은 게 있어서인지 센터에서의 지위는 공고했다. 그에 반해 사회로부터 내가 얻은 공식적인 신분은 고작 학생이 전부였다. 그것도 검정고시 준비생. 대인 관계에서 나를 정의하자면 그나마 가장 유의미한 건 수지 큐의 남자친구 정도랄까. 대외적으로는 ‘닥터 해든의 쌍둥이 동생’이나 ‘기적의 그 환자’ 정도가 더 알아주겠지만 그것만큼은 도저히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으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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