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제주 여행, 그리고..

저에게 제주는 좀 특별합니다.

중딩시절 선교활동을 한답시고 처음으로 제주를 가보았습니다. 그 시절의 제주는 사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모락모락 끝없이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에 대한 기억 뿐입니다. 아, 끙끙앓는 짝사랑을 했던 것 또한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아무래도 그때의 제주는 제게 아주 뜨거운 곳이었던 것이 확실하네요.

다음으로는 20대가 되고 처음으로 국토대장정을 떠났던 제주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있듯 제게도 바닥을 향해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인간관계와 학업 그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던 2015년 겨울, 저는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국토대장정'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수많은 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제주의 올레길을 걸었습니다.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에 대한 기억 뿐이었던 제주가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곳인지 그제야 알게되었습니다. 겨울이었지만 제주의 특수한 기후 때문인지 포근하게 느껴졌고, 불어오는 바람이 심통난듯 세찼지만 춥지 않았습니다. 제주의 바다, 그것을 따라 불어오던 바람과 향기 그리고 넓게 다져진 산 속의 길들까지 그 모든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 100명의 사람들이 함께했고 13명이 한 조를 이뤄 앞을 향해 걸었습니다. 다시없을 그 때의 기억들이 참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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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가파도의 청보리를 담은 것입니다

국토대장정을 다녀온 그 해 봄, 저는 다시 제주를 찾았습니다. 자연이 주던 신비한 기분에 다시 휩싸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주는 정확히 그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청보리의 푸르름이 말을 다할 수 없었고, 높은 오름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산은 자연의 숭고함을 그림처럼 보여주었습니다. 푸른 바다와 투명한 그 속은 참으로 아름다워 제 발길을 아주 오래도록 붙잡아 두었습니다. 봄의 제주는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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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곽치기 해변을 담은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하는 여행은 언제까지나 혼자이기에 가끔, 외로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로워질 무렵 두명의 언니를 만났습니다. 대구에 사는 36살, 누군가의 엄마인 언니. 그리고 서울사는 40세 골드미스 언니. (제주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소"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는데요, 저는 삼일은 여자들만 있는 게스트하우스 나머지 이틀은 파티 게스트하우스였어요. ) 예쁜 두 언니들로 인해 뚜벅이였던 저는 한결 수월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여행의 셋째날, 제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줄 놀라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이른 아침 숙소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가파도로 떠나게 된 부부입니다. 아이가 없는 8년차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먹는 것, 보는 것, 이동하는 것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까지 어느것 하나 다 값진 것 아닌게 없었던 것들을 제게 주었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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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날,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협재의 한 카페에서

감사한 것들이 정말 많아 이곳에 다 쓸 수도 없지만, 가장 크게 감사한 것은 그들의 댓가없는 나눔이었습니다. 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저에게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완전히 변화시켜 주었던 부부. 그들을 통해 받기만 하고 살아왔던 제게 인생의 빛이 새로 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 때의 경험으로 인해 저는 참 많이 변했습니다. 품은 것을 나누는 삶, 사랑을 나누는 삶, 물질을 나누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 제 본디 인격이 원체 말할 수 없을만큼 악했기에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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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이 지난 작년 여름, 친구들과 또 한번의 제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포스팅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값진 보물을 얻었던 바로 그 제주 여행입니다. 그 때를 떠올려 보면 초여름의 촉촉한 비의 향기를 닮았던 것 같습니다. 시원하고 꿈같던 시간들. 우리의 청춘같았던 그 여행, 다시 가고싶어집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느 하나 홀로 한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값지고 특별했던 것이겠지요.


지난 일주일동안 정말 정신 없이 지냈습니다. 올리고 싶은 것이 있어도 지나가는 시간 앞에 무릎꿇고 다음날, 또 다음날로 미루다 오늘이 되었습니다. 이웃님들의 근황과 글들이 궁금했지만 차마 들어와보지 못했던 스티밋. 조금 늦었지만 찬찬히 찾아가겠습니다.

이제 봄이 슬금 슬금 다가오나 봅니다. 떠오르는 기억들이 이토록이나 보송한 것들인 것을 보니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 힘든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저 또한 그러니 말입니다. 흐흐. 하지만 꽃피는 봄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다가올 나날들을 따스히 보내시길 바라요.

좋은 밤 되세요.
C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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