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CUT|기억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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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은 감각 의존적이다.

대부분의 순간을 색깔과 온도, 냄새로 기억한다.
어떤 추억을 년, 월, 일로 이야기하는 것이
내겐 거의 불가능하다.

그저 장미가 필 때쯤이었다고,
바다가 검은 날이었다고,
바람에 계피 향기가 묻어왔다고,
목에 두른 머플러가 까끌거렸다고,
구두에 쓸린 상처가 무척 아팠다고,
둘 사이를 지나던 바람이 칼날 같았다고,
그렇게 온몸을 다해 기억할 뿐이다.

감각 따위는 느껴진 직후
소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간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나는
나의 흐린 추억을 순수하게 믿을 수 없다.

추억을 믿을 수 없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 또 있을까.



[ONE CUT] 시리즈는 한 장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써 내려간 이야기 입니다.

-#ONE CUT | re·fine
-#ONE CUT | 속성에 대하여
-#ONE CUT | 태풍이 지나가고
-#ONE CUT |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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