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19. 글을 쓸 여유가 생기다

1. 남편은 휴가 중


  • 첫째에게 온 신경을 쏟다 보니 남편도 지쳤고, 요 며칠 둘째마저 아팠던 관계로 이번 주엔 휴가를 쓰기로 했다. 멀리, 오랜 시간 놀러 갈 순 없어도 짧게 짧게 음식점이나 쇼핑몰에서 데이트하기로 했다.

  • 강제 급여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은 덜어낸 오늘은 아침부터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7시 반 오픈 하자마자 들어서니 직원이 놀란 눈치다. 트뤄플 오일로 볶은 버섯이 올라간 빵이라 주문했는데 완전 내 취향이다. 사워도우 위에 트뤄플 오일, 소금, 후추, 느타리버섯, 포토벨로 버섯을 볶은 것, 그리고 스윗 바질, 파르메산 치즈, 잣, 타이 바질, 마늘로 만든 것 같은 바질 페스토가 올려져 있었다. 다음에 집에서 해봐야지.
    차이라떼는 인도식 차이 티를 기대하며 주문했는데, 정향 향이 강한 겨울의 스타벅스 음료 맛이다. 그런데 요즘 우유를 마시기가 다시 버거워졌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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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러지


  • 첫째에게 하루 6~7번씩 강제 급식을 하느라 몸이 지쳤나 보다. 게다가 더워서 햇볕을 못 쬐서일까?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다시 알러지 반응이 온다. 고기 알러지가 생긴 후 한창 스트레스가 심했던 시기에는 우유나 치즈도 역겨워서 못 먹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다시 그렇다.

  • 요 며칠 둘째마저 심각한 식욕부진을 겪어 결국 강제급여를 했다. 둘째는 힘이 좋아 첫째처럼 예쁘게 안고 있을 수가 없어 결국 엎드리게 한 채로 남편이 꽉 붙잡고 곱게 간 소고기 캔을 내가 손가락으로 찍어서 먹였는데, 그 때문에 나에게 알러지 반응이 왔다. 예전에도 받아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몇 번 손으로 먹였다가 그 손으로 긁은 팔에 두드러기가 올라와서 식겁했던 터라 진짜 깨끗하게 씻었는데, 이번에는 좀 많이 만져서일까? 알러지성 비염에 가벼운 결막염까지 왔다. 다행히 오늘 새벽부터는 활기도 식욕도 되찾아서 한시름 놓았다. 둘째의 식욕부진은 설사에 의한 것이었다. 아마도 원인은 새로운 가구,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음식 중 하나일 것 같다. 식욕부진에 대해선 집사일기로 자세히 쓸 예정이다.

3. 침대


  • 아부다비에 온 후 약 2년간 총 5팀이 여행 겸 우리 집에 들러서 자고 갔다. 어느 나라에서 왔든 간에 모두 한국인이라 매번 집에 있는 두꺼운 요만 깔아줬는데, 다음 달엔 외국인 친구가 남편과 아들 셋과 놀러 올 예정이다. 과연 이들이 바닥에서 잘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게다가 아들 셋은 어디서 재워야 하나 싶어서 결국 침대를 새로 구매하기로 했다. 처음엔 이케아에서 살까 했는데, 7년 쓴 우리 침대를 바꿔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과 사실 예전부터 사고 싶던 침대가 있었기에, 어차피 한동안 여행도 못 갈 것이라는 핑계로 우리 침대를 바꿨다. 호기심 많은 첫째는 침대를 세팅하자마자 떡하니 올라와서 자기 자리를 잡았는데, 겁 많은 둘째는 3일간 안방에 얼씬도 못 해서, 결국 내가 안고 침대 밑 숨을 곳을 구경시켜준 후에야 안방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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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침대의 최대 수혜자는 남편이다. 남편은 추위를 많이 타서 우리는 여름 내내 각방을 쓰고 있다. 나도 정말 많이 양보해서 항상 에어컨을 27.5도에 맞춰 놓고 있는데, 남편은 그 온도에서도 긴 팔, 긴 바지에 수면 양말을 신고서도 춥다고 한다. 결국 이 더운 나라에서 자신의 방엔 에어컨도 틀지 않은 채, 복도의 에어컨 냉기에 의존해서 잔다. 두꺼운 요에 얇은 이불을 몇 겹 쌓아줬지만, 침대만큼 푹신하지 않았기에 불편해하던 차에 자기에게도 침대가 생겼다며 좋아한다.

  • 강제 급식과 피하 수액이 너무나도 싫은 첫째는 안방에 나 이외의 사람이 들어오면 침대 밑으로 숨어버린다. 그런데 팔이 닿지 않는 곳에 숨기 일쑤라, 결국 침대의 아랫부분을 막아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상자로 담을 만들면서 나도, 남편도 마음이 너무나 불편해졌다. 싫어서 숨는데, 숨는 것조차 못하게 하면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침대 전체를 막지는 않고, 중간 부분만 상자로 막아서 숨을 수는 있되, 우리 팔도 닿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작업을 다 끝내고 상자를 가릴 목적으로 이케아에서 사온 커튼으로 파운데이션 침대를 덮었는데, 안방이랑 색도 어울리고, 빛을 가릴 수 있어 첫째와 둘째가 들어가서 쉬기에도 한결 아늑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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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자를 침대 높이에 맞게 자르고 접는 게 너무 귀찮아서, 기존의 침대는 휴지로 막아버렸다. 더워서 장 보러 가기 귀찮아서 카르푸 온라인을 자주 이용하는데, 무료 배달 서비스를 위한 최소 금액을 맞추기 위해 한 번에 사뒀던 휴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호기심 많고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첫째는, 안방 침대 아래를 막을 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꼼꼼하게 순찰하고 심지어 작업을 마치자마자 베타 테스터 까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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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치


  • 둘째가 개미 약을 먹었던 날, 도저히 요리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배달 음식을 먹었다. 보통은 배달 음식을 먹어도 크게 문제가 없는데, 그날따라 음식이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더운 와중에 배달이 지연되어 음식이 상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충격을 받아서였는지, 그 이후로 도통 소화가 되지 않고 첫째에게 줄 고기 냄새를 맡을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 이틀간 약과 매실청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가 대뜸 백김치가 떠올랐다. 작년에도 심하게 체한 적이 있었는데, 백김치를 먹고 나았던 것. 역시 이번에도 백김치를 먹은 후 위가 회복됐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 마트에서 사는 종갓집 백김치는 맛있는데 너무 비싸다. 500g 한 팩에 11,000원쯤? 급해서 한 봉지를 사 먹은 후에, 결국 백김치를 직접 담갔다. 한국에 있을 땐 주말농장 했던 해를 제외하고는 항상 친정과 시댁에서 갖가지 김치를 얻어와서일까? 김치를 사 먹는 게 너무 아깝다. ㅠㅠ 배추김치는 이곳에서도 한인 마트에서 사 먹지만, 나머지는 직접 담그는 중이다. 작년 겨울엔 동치미도 만들었고, 제일 간단한 파김치는 자주 해 먹는 편. 왠지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5.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참 힘들다


  • 첫째가 슬슬 입맛을 회복하다가 지난주에 갑자기 안 좋아졌다. 소변량이 늘어 수액을 중단한 것과 둘째 때문에 잠시 병원에 입원한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게 문제였던 것 같다. 결국 두시간에 한 번씩 강제 급여를 하게 되었는데 첫째의 반항이 심해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남편과 함께 하다 보니 남편은 퇴근 후에도 온전히 쉬질 못했고, 둘이서 피하수액과 함께 1일 권장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나도, 남편도 하루에 5시간 정도밖에 잘 수 없었다. 결국 주중에 일하실 분을 급하게 구하게 되었다.

  • 처음에는 2주간만 일하실 수 있는 분을 고용했다. 참 착한 분이었지만, 2주라는 시간이 정해져있었기에 고양이를 좋아하며 비자가 있는 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취업 비자가 없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고, 비자 스폰서를 해주기엔 피고용인이 저지르는 불법 행위까지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 명을 소개받았는데, 취업 비자를 제대로 확인시켜주지 않았고 결국 문자로 다시 요청했더니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했다는 얘기를 했다. 결국 다른 사람을 소개받았고, 여권을 제대로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보험 카드를 보여줬기에 비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문자로 여권, ID, 보험 카드 사진을 요청해두었다. 사실 두 번째 온 사람은 내가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 사람이 우리 집에 온 이후로 첫째가 극도로 예민해졌고, 둘째도 상태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함께 일을 하자고 약속했으니 차마 먼저 거절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실제 일하기로 했던 날 약속 시각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30분간 기다리다 연락을 해봤는데 처음엔 아프다고 하더니, 결국 자기 비자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했다. 화도 났지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주말 내내 내 신용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분이 오기 전날 밤 신용카드로 온라인 몰에서 쇼핑을 했었고 이후에 그 카드를 사용한 적이 없다. 어디선가 나오겠지 싶어서 그냥 있었는데, 어제 아침 2분 사이에 미국의 한 웹사이트에서 800달러가 결제되었다. 그 회사 고객 센터에 요청해서 역추적이라도 할까 싶지만, 카드사에서 환불해주는 방식이 보험인지, 카드가 사용된 회사 접촉인지 알 길이 없어 그냥 참고 있다.

  • 대체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이렇게 사건이 빵빵 터지나 했는데, 실제로 좋은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지인을 통해 구한 새로운 분이 고양이를 너무나 잘 다루시는 것. ㅠㅠ 나와 남편이 밥을 먹일 때 보다 첫째가 훨씬 저항 없이 먹을 뿐 아니라, 집에 자고 간 친구들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둘째가 첫날부터 얼굴을 내비쳤다. 집에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시는데, 고양이들은 그런 걸 느끼는 걸까? 그러고 보니 동네를 걷다 보면 갑자기 앞에 드러누워서 밥을 내놓으라고 하는 고양이가 많다. 자기들끼리 맡을 수 있는 고양이 냄새가 있나 보다.
    하여튼 이제 남편도, 나도 밤에 좀 정상적으로 잘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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