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끄적임] 지친 하루 끝, 당신을 위로하는 아날로그 감성 인디음악... 을 추천하다니 너는 나를 어떻게 아는거니? (08.23.2019)

다른 가족 모두 잠자리에 들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조명은 은은한 것 하나만 켜놓는다. 어차피 모니터가 밝으니 괜찮다. 스티밋 피드를 보기 직전 먼저 전화기를 봤다. 별 쓸 데 없는 알람들 중에 이게 눈에 띄었다. "지친 하루 끝, 당신을 위로하는 아날로그 감성 인디음악." 물론 구글이 소유중인 유툽 추천이다.

2시간 전만 해도 나의 하루는 그리 지친 하루는 아니었다. 아주 행복한 일만 가득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하루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아들과 싸웠다.

사건은 이렇다.
이제 막 만으로 3살이 된 아들은 영악하게도 말귀 다 알아들으면서 자기가 싫은 일은 못들은 척 한다. 그 싫은 일 중 하나가 밥 먹으면서 따라준 우유 잘 마시다가 끝에 약간 남은 거 마저 안먹거다. 음식을 남기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그러지 않아도 벼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한 번 제대로 시행해보자 생각했다. 일단 밥 다먹고 나면 배불러서 못먹을 수 있으니 분명히 말했다. 조금 있다 와서 이거 남은 거 다 마시라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목욕하고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 다가오는데...

결국 붙었다.
먹어야 한다는 나, 아빠와 먹기 싫다고 버티는 아들. 나는 내 앞에 앉혀놓고 먹이려고 했고, 아들은 고집 부리며 몸부림치고 울고불고... 그렇게 1시간 가까이 씨름했다. 아이는 마치 목욕을 다시 한 듯 머리가 땀으로 축축히 젖었고, 몸부림치는 아이를 잡고있던 나도 아이의 열과 더해져서 땀이 났다. 아이는 처음 한 30분 정도는 울면서 몸부림쳤으나 나중에는 지쳤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음~ 음~' 하는 소리로 울면서 잠들려고 했다. 물론 내가 '이거 네가 남긴거야. 네가 마셔야 해.' 하면서 잠들도록 놔두지 않았지만.

몸부림치는 아이를 힘으로 누르면서 계속 생각한다. '왜 안먹으려 할까? 그냥 고집인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밥 먹은 지 시간도 많이 지났고 남은 우유가 진짜 조금인데... 이렇게 내가 힘으로 아이 고집을 꺾으면 버릇이 고쳐질까? 혹시 이게 고문은 아닐까? 혹시 이게 내가 내 기분 나쁘다고 화풀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려고 하는 것 같았던 아이는 멀리서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 다시 발광 수준의 몸부림을 친다. 아이가 엄마를 목청것 찾지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싸움이 그래도 다행히 어느 순간 끝났다. 아이가 땀을 많이 흘렸고 힘들 것 같아 '자, 이거 다 마시면 여기에 쥬스 따라줄게' 라고 당근을 제시하자 엄마가 오지않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던 아이가 '딜'을 외친다. 그동안 1시간 가까이 컵을 밀어내기만 하다가 갑작스런 태세 전환으로 컵을 들고 원샷을 한 후 컵을 들고 냉장고로 나를 잡아 끈다. 다행히 이렇게 끝났다.

평소보다 좀 늦었지만 이렇게 겨우 내 시간을 찾았다. 그런데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씁쓸한 승리라고 해야할까. 나를 우울의 구덩이에 밀어넣어놓고 아이는 꿈나라로 가버렸다. 그러다가 왠지 나만을 위해 추천해준 것 같은 유툽의 노래 목록을 보니 좀 소름 돋을 뻔...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니 밤에 추천하는 음악 목록이라면 당연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루의 끝에 지쳤을 테니 저걸 추천하는 게 안전한 패가 아닐까. 그리고 들어보니 내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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