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걷는 길_36(1)

Santiago de compostela

이별 하나. (한의쌤, S&C, 존 일행 그리고 쉬에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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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모두 모여 츄러스를 먹는다. 아직도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나에게 이별은 늘 언제나 갑자기 준비 없이 왔었다. 아마도 그래서 더 그렇게 미치게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준비된 이별은 덜 아플까?

“순례자" 이 이별을 위한 준비는 무엇일까?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걸까?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한의쌤은 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 어제 우리가 반갑게 만났던 곳에서 잘 있으라고 인사를 하고 혼자 쓸쓸히 광장을 빠져나갔다. 슬픔을 꾹꾹 누른 얼굴. 한의쌤의 그런 슬픈 표정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혼자 뒤 돌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너무 아팠고, 그 모습이 왜 그리 슬퍼 보였는지... 그 슬픔이 내 가슴에 콕 박히는 거 같았다.
떠나가는 한의쌤을 보고 모두들 잠시 멍하니 넋이 나가는 거 같았으나, 곧바로 다들 마음을 추스르고... 나와 K만 유난히 이별에 힘든 모습을 보인다.

어제는 알베르게를 찾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순례 증서를 받지 못했기에 오늘에서야 K와 순례 증명서 주는 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도 아닌 나는 이 증명서는 왜 받아야 할까? 내가 800km 걸은 건 다 아는데...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나에게 필요할 거 같지는 않은데... 나중에 호호 할머니가 되었을 때보면서...그래 그때 그랬지... 뭐 그럴까?
딱히 필요한 건 아니지만 안 받으면 괜히 후회할 거 같아서 그냥 나도 K를 따라 길고 긴 줄을 선다.

산티아고에 오면 미겔 일행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내가 30km 강행군을 했으니 먼저 도착하지는 않았을 텐데... 다른 순례자들도 미겔 일행을 보지 못 했냐고 나에게 묻고, 나는 그들이 어디까지 오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다. 결국, 존과 몇몇 다른 순례자들도 미겔을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못 봤다고 한다. 엄청 서운해하는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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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성당 주변에 있다 보니 여긴 더 이상 도착의 기쁨의 장소가 아닌 이별의 장소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은 이 마음이 몰까... 아쉬움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이 낯선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냥 기운이 없다.
더 이상 걷지 않는다. 까미노는 끝났다. 나는 더 이상 순례자가 아니다. 이것에서 오는 이 기분…
나는 아직 까미노를 걷는 것 같고, 나는 아직 순례자이기를 원하는데 그럴 수 없는 이거…

더 걸을까? 묵시아.. 피니스테라까지 걸어갈까?

어차피 당장 출근을 해야 하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더 걸을까? 그런데 5일 더 걷는다고 이 기분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더 걷는 건 순례자인 나와 이별하기 싫어서 걷는 것일 뿐. 결국,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조금 연장할 뿐 의미가 없다.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마음속이 꽤 심란해진다.

S와 C는 정신 나간 내가 걱정되는지 계속 주의를 주고,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 프랑스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떠났다. K와 함께 알베르게로 돌아온 나는 기운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명 한명 떠나 보내는 산티아고가 슬픔으로 나를 덮고 있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아주머니는 영국에서 온 순례자이다. 벌써 두 번째 까미노인 그녀는 이곳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다. 소파에 앉아 정신 놓고 밖을 보는 나의 모습에 내가 걱정된 모양이다. 옆에 앉더니 무슨 일이냐고 따뜻하게 묻는다. 그녀의 따뜻한 물음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순례자들과 헤어지면서도 보이지 않던 꾹꾹 눌러 두었던 눈물이 그냥 주르륵...
다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내 옆에서 토닥여주는 아줌마.

나는 나의 낯선 감정들을 이야기했다. 이별의 산티아고가 너무 아프다. 같이 걸은 순례자도 하나둘 떠나고 있는데 순례자였던 나와의 이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등등...이런 내가 너무 당연하다는 그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그녀는 나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그러면서 내가 바로 집으로 가는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는지 나의 일정을 묻는다. 바르셀로나에 며칠 머물다가 집으로 간다는 나의 말에 아주머니는 경악! 을 하신다. 지금 내 상태로 바르셀로나에 가면 안 된다고... 큰일 난다고. 나 같은 사람 많이 봤다고... 바로 도시로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고... 집으로 가도 힘들 텐데 바르셀로나는 더더욱 아니라고….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포르투로 가라고 하신다.
포르투. 거긴 오늘 아침 한의쌤이 간 곳인데…
왜 포르투냐고 묻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딱 한 마디 하신다.
“가 보면 알아. 그냥 꼭 포르투로 가도록 해”.


//* 뺄 것 빼고 빼지 말아야 할 거는 빼어내지 말아야 하는데... 편집능력이 없는 저는 그 반대로 하는 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이별의 시작입니다. 같이 걸은 순례자들과의 이별과 순례자였던 저와 이별을 하는 부분들이 당분간 조금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에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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