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중’
수술실 옆 작은 모니터에 떠 있는 아내의 이름과 그 옆에 붙은 수술 중이라는 말을 3시간을 넘게 째려보고 있었다. 불길한 상상에 지금껏 봐왔던 각종 영화, 드라마, 소설의 내용이 가미되어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었다. 한숨이 폐부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오늘 아침은 여타의 토요일과는 다르게 분주했다. 점심 때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35주차. 아직 5주정도의 시간이 남았기에, 별다른 징조도 없었고 건강한 아내이기에 쌍둥이는 대부분 조산하게 된다는 말은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가 ‘이슬’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빨리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바짝 긴장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 갈 차림으로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로 향했다.
진료를 하던 담당의사는 아이들이 나오려는 거 같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 산부인과에서는 쌍둥이 출산 수술이 어려우니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어서 가라고 알려주었다. 이때부터 큰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아내를 대학병원 응급실에 접수시키니 각종 검사가 이루어지고 곧 바로 수술이 잡혔다. 순식간이었다. 대학병원을 몇 번 경험했지만 늘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만 기억에 남아있었다. 근데 이곳에서 이런 빠른 진행을 경험하게 되다니! 이것이 나의 불안함을 양껏 증폭시켰다.
그렇게 아내를 본관 2층에 있는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다 괜찮을거라 말하며. 그렇게 아내가 들어가고 수술실 옆 작은 모니터에 아내의 이름과 수술중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니터가 나의 눈빛에 뚫어져갈 즈음에 투명 케이스가 씌워진 침대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작고 쪼글쪼글한 두 생명체가 그 속에 있었다. 특히 그 중 더 작은 것은 다리가 제멋대로 휘어져 있었다. 수술복의 의사가 아내의 남편을 찾고 그 찾음에 응답한 나는 의사와 함께 아까 지나간 두 생명체를 뒤따랐다. 그 두 생명체가 내 쌍둥이 딸이었다.
아내는 출혈이 많다고 했다. 지혈이 안 돼서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고 했다. 앞이 캄캄해졌다. 애써 정신을 붙들고 아이들 수속 서류를 읽고 사인했다. 한 아이의 비틀린 다리에 대해 묻자 쌍둥이가 위아래로 위치하고 있었는데 아래에 있던 아이가 위에 있던 아이를 받치느라 그렇게 된 것이니 일단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몇 달을 그 어두운 곳에서 둘째를 받쳐가며 지냈을 첫째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 후 다시 수술실 앞에 자리했다. 수술실 옆 작은 모니터에는 아직도 아내의 이름과 수술중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11년 전에도 이 자리에서 수술실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간암 말기의 판정을 받으셨고 일단 수술을 해보자는 판단에 바로 이 대학병원, 이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았었다. 그리고 2달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이기에 이 곳 수술실은 위중한 사람들이 많이 거쳐 갔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많은 지인들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번엔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졌다. 나는 나의 상상력과 전쟁을 했다. 상상 속에서 난 이미 아내를 잃고 장애를 가진 쌍둥이를 힘겹게 키우는 홀아비였다. 점차 상상은 기정사실화 되고 결혼식을 위해 차려입은 양복은 장례식 상주의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대학병원 번호였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힘겹게 받은 전화 넘어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보호자가 어딜 가 있는 거에요? 환자가 수술실에서 나온 지가 언젠데요. 어서 XXX호실로 오세요!”
어안이 벙벙하다가 알겠다며 당장 뛰어가겠노라 답했다. 실제로 달려갔다. 눈 앞에 아내가 살아있었다. 아프다며 어디 있었냐며 울음을 터트리는 아내가 그렇게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그제야 두 쌍둥이 딸의 아빠가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그렇게 4월 25일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