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진들
박용주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영혼들이
흰빛 꽃잎이 되어
우리네 가심 속에 또 하나의
목련을 피우는 것을
그것은
기쁨처럼 환한 아침을 열던
설레임의 꽃이 아니요
오월의 슬픈 함성으로
한닢 한닢 떨어져
우리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피어나는
순결한 꽃인 것을
눈부신 흰 빛으로 다시 피어
살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짓는
우리들 오월의 꽃이
아직도 애처러운 눈빛을 하는데
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
오늘 학교에서 수업공개를 했습니다. 수업공개를 하면 모든 교사가 그 수업에 참관하고 이후 수업협의회를 하게 됩니다. 오늘은 특히 외부 공개여서 타교의 선생님 24분이 더 참관하러 왔습니다. 오늘 공개한 수업은 국어 수업으로 문학비평이 그 주제였고 '목련이 진들'이 그 소재였습니다. 교과서에 있는 시는 아니고 5.18 즈음한 지금의 시기에 의미가 있고 이 시를 박용주 시인이 만 15세, 중학교 2학년 때 지어 수업 대상인 중학교 2학년들과 같기에 그 또한 연결고리가 되어 주리라 생각하여 국어 선생님이 선정했습니다. 덕분에 시를 하나 더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는 전남대학교 오월문학상에 당선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응모하던 상이라 중학생이 쓴 시의 당선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심사자인 김준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고합니다.
작품의 내용, 작품의 형식은 가히 놀라웠으며, 만약 그 작품들이 진정 중학생의 작품이라면 우리는 해방 후 비로소 천재 시인을 만났음을 말할 수 있으리라. 자아, 보라. 5월을 얼마나 절실하게 읊고 있는가를!
박용주 시인의 아버지는 1980년 9월 돌아가십니다. 그의 모든 시가 80년대의 암울함을 노래하기에 아버지의 죽음이 5.18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엔 시를 대하고 목련이 어떤 꽃인가를 묻고 목련이 5월에 피는지를 묻고 시어나 시구를 찬찬히 살피며 시를 읽어냅니다. 사실 목련이 어떤 꽃인지 모르는 것에서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이 이토록 자연을 대할 기회없이 사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사실 시골이라고 예전처럼 산과 들로 뛰어놀며 크는 것이 아니니까요. 컴퓨터, 스마트폰 보며 놀고 부모님 차로 등하교를 하니 도시 사는 아이들과 다름없이 자연을 대할 기회가 없습니다. 시 자체를 읽어내고 그에 대해 이야기 나눈 뒤 5.18의 이야기와 시인의 이야기를 자료로 주자 시를 시대상황과 얽어 읽어냅니다. 시만으로 이해 못하던 시어와 시구가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 후 '목련이 진들' 시에 대한 비평을 작성하고 이를 읽고 공유합니다. 혼자서라면 재미없을 이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들 자신의 능력껏 해냅니다. 어떤 아이는 비평가인듯 감상을 쓰고 어떤 아이는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어떤 아이는 자신의 형에게 이 시를 알려주는 형식으로 써 냅니다. 어렵게 어렵게 한줄로 감상을 써낸 아이도 있습니다. 그 과정을 알기에 오히려 그 한줄의 감상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시적 화자, 주제, 소제, 표현방법(비유, 상징 등), 시대상황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그걸 외우게 했던 저의 학창시절 시를 배우던 국어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시라는 것을 어려워하고 읽을 엄두도 내지 못 했던 거 같습니다. 수업참관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학생들이 부러워집니다.
수업을 끝내고 수업협의회를 하며 타시도에서 온 선생님 한분의 말이 놀라웠습니다. '목련이 진들'이라는 시를 수업 소재로 쓸 수 있는 것에 깜짝 놀랐노라고, 본인이 있는 지역에서 이 사실이 알려지면 태극기 부대들이 출동하고 난리가 날 것이라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맞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목련이 진들'이라는 시를 가지고 수업을 했지만 정치편향적인 부분은 없었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되려 제가 그 선생님 보다 더 놀랐습니다.
다시 시로 돌아가서 시를 읽으며 1980년 5월 슬픔과 그 후 매해 맞이하는 5월에서 그 슬픔을 반복하는 아픔을 느껴봅니다. 15세의 중학생이 7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보낸 8년간 쌓인 슬픔이 저렇듯 시로 표현됨에 감탄과 그렇듯 시를 남겨 줌에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박용주 시인은 어린 시절 그렇게 2권의 시집을 내고는 다시 시를 쓰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