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에 급급해 삶에 여유가 없어지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상실된다. 그리고 뭔가 좋아했던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잊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잃어버리게 된다. 그 기억이(추억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 기억에 대한 감정은 바삭 마른 낙엽처럼 메마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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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시간에 맞춰 흘러나오는 교가를 듣고 1층에 내려가 퇴근 지문을 찍었다. 당장 내일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서류를 쓰기 위해 '연구실'로 올라갔다. 유리창이 없어 환기가 되지 않는 연구실은 추운 겨울에는 그나마 괜찮았다. 퇴근 시간 이후에 난방이 끊겨도 두꺼운 과잠을 입으면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두 달 전에야 겨우 책상과 의자를 받았다. 이제는 이곳에서 서류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책장에 놓여 있는 책 3권과 도라에몽 시계가 이 연구실에 있는 전부다.
교육을 망치는 것이 뻔한 NCS서류를 억지로 쓰기 시작했다. 다른 교수님들과 나눠서 쓰기 때문에 내가 쓰지 않으면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준다. 나 혼자 반대하고 거부해봐야 민폐만 끼친다. 벌써 몇 번째 다시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서류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이 학교에 아무도 없다.
교육부의 지침이 매번 바뀐다는 불평, 직원이 행정지침을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불만들이 넘쳐났지만 그런 불평불만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계속 반복해서 다시 써야 한다.
어제까지 근 일주일 동안 학과의 모든 기자재를 같은 과 교수님과 나 둘이서 정리했다. 구조조정으로 조교는 없다. 조교가 할 일까지 우리 둘이 해야 한다.
1,000여 개의 기자재를 출력한 명단과 일일이 대조하고 못쓰는 기자재는 분해해서 밖으로 옮겼다. 명단과 맞지 않는 기자재는 다시 시스템에 입력했다. 시스템은 15년도 훨씬 넘은 구형이다. 입력하다가 버그가 생겨 계속 튕겨 나왔다. 입력될 때까지 계속 반복했다. 전에 있던 교수님들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는 느낌이다.
명단과 맞지 않는 기자재를 다시 정리해서 시스템에 입력했다. 그 서류를 아래한글로 다시 작성했다. 그 서류를 작성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보고서를 다시 결재 시스템에 입력했다. 그 서류를 프린트해야 하는데 정교수인 두 명 모두 연구실에 프린터가 없다. 파일을 USB에 담아 시간강사 휴게실로 가서 출력했다.
건물 문을 잠가야 한다는 수위 아저씨의 독촉에 노트북을 챙기고 기숙사로 올라갔다. 기숙사의 방바닥은 차가운 석재로 마감되어 있어 방에 들어가면 발바닥이 시리다. 천장에 달린 온냉풍기로 냉난방을 한다. 난방을 켜고 노트북을 세팅했다. 더운 바람이 나와 금방 방이 건조해졌다.
샤워를 하고 문을 열면 건조함이 좀 사라진다. 씻으려고 물을 틀었지만 더운물이 나오지 않는다. 또 고장인가 보다. 차가운 물로 간단하게 세수만 했다.
침대의 온수매트를 켜고 NCS서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손이 시리다. 온풍기가 또 꺼졌다. 그만하자.
서류 작업을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다행히 오늘은 전기가 나가진 않아서 온수매트는 따뜻하다. 이불 밖에 있는 얼굴의 코 끝은 시리지만 야영 나왔다고 생각하면 견딜 만하다.
창문 밖 바로 밑에는 흡연구역이 있다. 옆 건물 학생기숙사에 있던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러 나온 것 같다. 카아악~대며 연신 가래를 뱉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온갖 천박한 욕설과 함께 아는 여자애를 '따먹었다는' 얘기를 자랑스레 나눈다. 그 내용이 거의 강간 수준이다. 갑자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노래를 한다. 새벽 1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다.
몇 번인가 시끄럽다고 말했지만 그때뿐이다. 이 상황은 기숙사에 올 때마다 매번 반복된다. 3M 귀마개를 꽂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본다.
아. 오늘 데이비드 보위가 죽었지.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예전에 분명 데이빗 보위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데이빗 보위가 죽었구나. 그런데 그게 뭐?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 지문을 찍고 어차피 다시 수정사항 추가되어 되돌아 올 NCS서류를 써야 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 수업을 하고, 기자재 정리가 끝났다는 것을 확인하는 서류를 써야 한다.
데이빗 보위를 좋아했다는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 감정은 바삭 마른 낙엽처럼 부서져 사라져 버렸다.
'여유'가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저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며 세상과 멀어져 간다. 누가 비리를 저질렀건 말건 전쟁이 나지 않을 바에야 그저 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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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년이 지나갔다. 말라 부서진 감정에 조금씩 습기가 다시 찼다. 데이빗 보위를 생각하며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최순실 사건을 보며 분노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생존에 급급해지면 자연스레 사회문제에 관심이 멀어지게 된다. 하루 종일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빈곤층 일수록 보수성향의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람의 삶에서 여유를 빼앗아가는 것이 어떤 세력의 의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생각'과 '감정'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