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오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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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마음 안 좋게 하는 거 아니에요.”

수인은 직장 동료 L이 자신에게 한 이 말 한마디에서 ‘무지’와 ‘오만’과 ‘비겁’을 느꼈다. 수인은 여러 해 몸담았던,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조직을 떠날 준비를 천천히 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이미 수인의 결정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수인의 책상이 깔끔하게 치워지고 나서야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L은 임신한 다른 동료가 그 책상을 보고 상심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L의 이 말은 주위 사람을 섬세하게 살피고 배려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
*L의 말에 담긴 의미

L은 수인이 이 조직을 떠나는 결심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실은 크게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L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의 섬세함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것은 '무지'였다.)

수인은 떠나기 전 그들과 함께 할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L은 수인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라 넘겨짚었으며, 떠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라고 충고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르는 '무지'인 동시에, 다른 사람은 자신처럼 섬세한 생각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오만'이었다.)

굳이 ‘임산부’라는 단어를 강조한 것에는 몇 가지 의도가 담겨 있었다. 자신은 연약하고 돌봐줘야 할 임산부를 세심하게 챙기는 사람임을 내세운 동시에, 너(수인)는 그런 세심함이 없다는 것을 표시하면서 자신의 우수함을 강조한 것이었다.

또한 평소에도 가끔 드러냈던 여성에 대한 우월의식, 여성은 남자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남자가 보살피고 보호해야 할 존재라는 성차별도 담겨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우월함을 외부에 알리려는 '오만'이었다.)

또한 L의 이 말은, 자신은 괜찮지만 다른 동료들은 나(L)와 달리 마음이 약해서 괜찮지 않으며 다른 동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수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L은 이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원인과 결과, 그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겼다. 자신은 한 발 물러나서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고 있음을 과시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비겁'이자 자신이 그 모든 상황을 위에서 굽어 보고 있다는 '오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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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은 L의 그 마지막 말이 고마웠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는 일말의 아쉬움을 깔끔하게 지워주었기 때문이다. 수인은 마치 그 말에 동조하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네...”라고 대답하고 그 조직을 떠났다.

수인은 L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그 책임을 남에게 뒤집어씌우거나 남에게 충고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 말이 불쾌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철저하게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수인은 비겁하거나 무지하지 않을지는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실은 진정으로 오만한 사람은 수인이었다.

#영화도그빌을모티브로

진정한 오만함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