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링(혼자서 욕설을 토해내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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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조용한 방안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이 멋진 문장을 음미하고 있었다. 대입을 준비하는 남학생의 학부모라면 자기 자식이 이렇게 '타락'하기를 바랄 것이다.

갑자기 적막을 깨고, 창밖에서 고래고래 욕설을 내지르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싸움이라도 난 것일까. 베란다로 가서 목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남자는 혼자였다. 평소에도 조용하고 한산한 골목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차 몇 대가 그 남자 옆을 지나간다. 욕설은 멈추지 않았지만 차에다 대고 소리 지르지는 않는다. 그 욕지거리의 대상이 마치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인 것처럼 보였다.

나이는 한 40대 정도였다. 말끔한 차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숙자처럼 허름하지도 않다. 지적인 인상은 아니지만 양아치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마른 체격에 지쳐 보이는 표정, 햇빛에 그을린 얼굴,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다. 저녁이 깊어 가고 있지만 아직 환하다. 여름은 낮이 길다. 밤을 기다리지 못하고 낮술을 과하게 마신 건가. 약을 했나. 아니면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인가.

그의 욕설이 쉬 그칠 것 같지가 않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서 경찰에 문자신고를 하려고 휴대폰을 들었다. 그래도 혹시 그칠지 몰라 잠시 망설이면서 그의 욕설과 함께 베란다에 서 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점점 그 남자에게 동화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술 취한 무리들이 시끄럽게 왁자지껄하며 지나가는 모습과는 달랐다. 그가 '혼자'라는 것이 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연약한(겉으로는 강한 척하는) 남자들은 언제나 무리를 지은 상태에서 천박하고 폭력적인 언행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혼자였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도 '연약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무리 짓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당한 것일까.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이 '세상'에게 당한 것일까.

마구 욕설을 질러 대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만, 왠지 처량하다. 마치 무리에서 도태되어 떨어져 나간 늑대가 외로움과 불안함을 감추지 못해 워우우우~~ 하면서 울부짖는 하울링처럼 들린다. 그 남자의 '하울링'에 공명한 것인지 그를 향한 짜증은 사라지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리다. 그를 괴롭게 만든 것(사람이건 어떤 상황이건)에 같이 분노해야 할 것만 같다. 같은 종(무리)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공감해야 생존과 진화에 유리한 생명체의 본능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욕설을 내지르며 천천히 한쪽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곧 베란다의 창틀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욕설은 멀어져 갔고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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