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경기가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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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세기 말. 90년대 초반 홍익대학교 운동장.

시각디자인과가 미대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줄다리기의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는 조소과였다. 평상시 힘든 작업으로 단련된 두터운 근육을 자랑하는 조소과는 슬램덩크의 산왕고 같은 존재였다.(당시는 슬램덩크에 아직 산왕이 등장하기 전) 우리가 과연 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이들을 상대로 얼마간 버틸 수 있기만 해도 좋겠다.

조소과는 언제나 줄다리기를 이겼으며 앞으로도 조소과를 이길 미대의 다른 과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힘 좀 쓴다는 정예 멤버로 구성된 두 학과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줄이 끊어져 버렸다. 협력하는 인간의 이 무시무시한 힘이라니.

끊어진 줄을 동여매고 다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줄다리기는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리가 하나가 되어 리듬을 타면 승산이 있다. 선배의 구호에 맞추기 시작한 시디과 무리들. 그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구호를 외치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기적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결코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조소과를 물리치고 말았다. 시디과 모두는 감격에 겨워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으며 환호했다.

#2. 21세기. 리오 올림픽 시즌.

체육대회에서 이런 뜨거운 감격을 느껴본 것은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도 기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안정환, 박지성 등은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아니다. 때문에 그들이 골을 넣었을 때 즐거웠지만 시디과가 줄다리기를 우승했을 때 그 즐거움보다는 못했다. 시디과는 다 아는 사람들이다. 같이 과제하고 밥 먹고 부대끼고 살았던.

올림픽이 한창이다. 한국 선수를 응원하는 이유는 같은 과 선후배들처럼 그들에게 친근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국적이 한국이라서가 아니라 친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남북한이 축구를 했다. 남한이 골을 넣자 아나운서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저 아나운서 저러다가 뒷목 잡고 쓰러지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와 남북한은 한민족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적이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을 하다가 90년대에 남북한 단일팀이 만들어졌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 나이에도 이런 여러 가지 행태를 보게 되면 당연히 뭔가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국가는 어떤 집단의 편의에 맞춰 얼마든지 '조정' 될 수 있다는.

국가라는 작위적인 프레임을 걷어내고 올림픽을 구경해도 얼마든지 재미있다. 그저 조금 더 가까운 유전자를 지닌, 동네를 걸어가면 쉽게 마주칠 것 같은, 나와 함께 부대끼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조금 더 친근한 한국 선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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