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에서 힘자랑하는 '호모 에렉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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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시간이 지나서 지하철 안이 조금 한가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한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남자 둘이 언성이 높아지며 말싸움을 시작했다. 덩지가 크고 '남자답게' 생긴 남자가 순하게 생긴 남자의 목과 가슴을 손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순하게 생긴 남자도 마냥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는다.

폐쇄된 지하철 안에서 영문도 모른 채 그 싸움을 지켜봐야만 했다. 순하게 생긴 남자는 덩치 큰 남자에게 결코 고개를 숙이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폭력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티가 역력했다. 당연히 그 순하게 생긴 남자의 태도에 호감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도 그런 눈치였다.

각자의 지인들과 주위 사람들이 싸움을 말렸다. 몸집 큰 남자가 뒤로 물러나면서 싸움은 끝이 났다.

몸집 큰 남자는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자 친구로 보이는 한 여성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감싸 안았다. 그 여자는 자기 어깨에 올라간 그 남자의 손을 징그러운 벌레 쫓듯 치웠다.

그 여자는 그를 외면한 채 곧 내릴 사람처럼 지하철 문 바로 앞에 꼭 붙어서 뒤돌아 서있었다. 그 뒷모습에서도 창피함이 느껴졌다. 출입문 유리창에 비친 그 여자의 얼굴에는 창피함, 부끄러움, 짜증이 뒤덮여 있었다.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 시절이었다면, 강한 힘을 과시한 그 수컷은 암컷에게 자랑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 남자가 여자 친구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 안는 행위는, "나 잘했지? 나 멋지지? 칭찬해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21세기의 평범한 호모 사피엔스였고, 남자는 25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였다. 그 여자와 그 남자 사이엔 25만 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이 가로막았다.

지하철 안에서 힘자랑하는 '호모 에렉투스'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