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 임진왜란 중에서.
이순신과 의병의 활약으로 보급로가 막힌 일본의 고니시 부대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 공격으로 평양성 점령 6개월 만에 한양으로 퇴각했다. 집결한 한양에서 등을 보이고 한 번 더 퇴각하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제 6군 사령관 다카카게는 왜군 4만 명을 총동원해 벽제관에 진을 친다.
퇴각한 왜군을 얕본 명나라 이여송은 크게 대패하고 개성까지 후퇴한다. 벽제관 패배 이후 명나라 측은 강화에 무게를 둔다. 일본 진영 역시 이제 승기가 없음을 알고 안전한 퇴각 방법을 찾는다. 명과 일본은 협상을 통해(조선은 협상 테이블에서 빠진다) 일본의 안전한 퇴각을 서로 합의했다. 작전권은 명나라에게 있었기 때문에 퇴각하는 일본군을 추격하려는 권율 장군은 명나라의 제지를 받는다.
명의 참전 이전, 무너진 조정을 믿고 그 명령을 받으면 다 죽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자력으로 전세를 반전시켜 나갔다. 관군과 의병은 자발적으로 나서 싸웠고, 장수들은 조정의 지시 없이 알아서 싸웠다.(지시를 받을 형편도 되지 않았다)
명나라의 참전과 작전권 헌납, 그리고 전쟁을 끝내려는 명과 일본의 강화 의지로 인해 이제 의병과 장수들은 명나라의 명령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지지부진한 강화 협상으로 장수들과 병사는 의욕을 잃고 의병 조직은 급격히 무너졌다.
의병들의 활약을 두려워한 조정은 의병장 이산겸, 김덕령 등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다.(거짓 고변으로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조정의 무능 때문이다) '수정 실록'에서는 김덕령의 죽음 이후 용력을 가진 자는 모두 숨어버리고 다시는 의병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전한다.
명나라에게 작전권을 헌납한 결과 전쟁을 바로 끝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후 다시 정유재란이 발발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전작권도 없이 북을 선제공격할 수도 있다는 큰소리를 내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임진왜란 때의 무능한 관료들과 판박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