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작품이란 그걸 만든 사람의 내적 자아를 드러내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나. 너희의 작품이 너희의 ‘영혼’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에서 예술작품을 통해 그것을 만든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위 대사에 나오는 ‘영혼’은, 발 없는 귀신같은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 성향, 자질 같은 것을 뜻한다. 어떤 한 사람이 만든 음악, 시,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에 동감하는 편이다.(확신까지는 아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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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들과 주위 감상자(뮤지션 포함)들이 인정하는 한 음악이 있다. 곡의 구성, 개성, 완성도 등 여러 면에서 괜찮은 음악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왠지 그 음악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좋아지지 않는다. 괜찮은 음악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겠지만, 끌리지가 않는다.
나중에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 사람은(그의 영혼은) 배려 없고 무례하며 까칠했는데, 그가 만든 음악에 그의 영혼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그의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계획’으로 인해 음악의 완성도는 높았지만, 그의 영혼을(무례함, 이기심, 나르시시즘) 감출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