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오는 학생들은 서울 4년제 대학에 오는 아이들과 다르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부족한 아이들을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인재로 교육해서 내보내는 것이 더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이 말을 하며 교수와 교직원들에게 열심히 할 것을 당부한다. 그럴듯한 말로 들린다. 솔직한 말로 들린다. 자신들의 현재 위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인정하는 말로 들린다. 그리고 그 판단에 어울리는 합리적인 목표 설정과 교육자로서 윤리적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제시하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이 말은 여러모로 ‘사악’하다. 그렇다. 단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사악한 말이다. 거친 욕지거리나 저주의 악담보다 훨씬 악하다.
‘수준 낮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자신들의 알량한 ‘명예’와 삶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낮은’ 수준의 아이들이라고 무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더욱 사악한 것은 그 생각을 합리적 판단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부족하고 떨어지는 아이들을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만든다는 환상, 그 학생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굽어보며 따뜻하게 다독이고 때로는 엄하게 훈육하여 이끌어준다는 환상 속에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학벌주의와 계급주의 사회가 굳건히 유지될 수 있도록 순응하며 성실히 부역하도록 교직원들을 독려한다.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이란 말을 통해서 인간의 쓸모 있음과 없음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판결한다.
거친 욕설을 하며 길거리에 침을 뱉고 다니는 '양아치'들보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지성’적인 말을 하는 이들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사악하며 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