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主體), 객체(客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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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랜드’에서 여자 주인공의 친구들이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파티에 가자는 장면이 등장한다. 어떤 여성은 그 전통적이고 상투적인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전통적이고 상투적인 좋은 남자의 기준은 외모를 제외하면 돈과 권력이다. 가난한 남자가 부잣집 여자를 만나는 스토리도 간혹 존재하지만, 그 부잣집 여자는 대부분 부잣집 남자의 딸이다.

여자는 전통적으로 객체로 묘사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의지와 능력이 있더라도, 남자에 의해 삶의 방향이 바뀐다.

상류층의 파티에서 돈과 권력이 있는 남자들을 ‘구하려는’ 여성의 적극적인 행동을 주체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 사회에서는 각자 개인의 능력,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미 성별로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구분(차별)을 개인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조직적인 운동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는 남녀가 바뀌는 설정이 나온다. 역시 마찬가지로 전통적이고 일반적이며 상투적이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여자가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호감을 일으킨다. 남녀의 역할을 바꾸고 그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서 남녀의 차이와 차별에 대해 고민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긍정적인’ 면은, 남녀에게는 차이가 아닌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각자 개인의 성향과 능력과 관계없이, 여자는(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혹은 이럴 것이라는 사회적인 판결(判決)은 변함없다.

과거의 영화나 일본 만화들을 현재의 관점으로 다시 보면 불편함을 훨씬 넘어 끔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린아이들이 하루 16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 합법이었고, 이를 금지하는 것은 일을 하고자 하는 어린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어린이 노동착취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산업혁명 시대와는 달리 어린이 노동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인 관념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어린이 노동착취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관점은 바뀐 것처럼,

‘라라랜드’나 ‘너의 이름은’ 같은 ‘아름다운’ 영화에서 여성이 주체가 아닌 객체로 묘사되는 장면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일부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닌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