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인간이다.
-헨리크 입센
인간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다. 탄생의 순간과 소멸의 순간을 함께하는 것은 없다. 오로지 홀로 그 순간들을 견뎌야 한다. 살아가면서 수반되는 수많은 외로움과 고독에 더하여 인간에겐 필연적으로 존재적 고독이 있다. 위의 명언처럼 고독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은 강한 인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강하지 않기에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 강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고독을 관조함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진리를 찾는 한 구도자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독과 같은 본질적 가치들은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나의 고독에 대하여 정의 내릴 수 있다. 고독을 왜 정의내려야 하고 이를 알아야 하는가? 고독은 나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현대 정신과학은 행복을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고독을 덜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독을 알아야 한다. 고독을 아는 것은 고독의 종류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나는 고독을 때때로 느낀다. 작게는 질펀히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적당하게는 집에 홀로 남아있을 때에, 크게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에 느낀다. 전자의 두 경우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든지, 가족들이 집에 돌아온다든지, 결혼을 한다든지 등의 비교적 쉬운 해결책이 있다. 그러나, 후자의 고독은 존재적이며 필연적인 고독이다. 이 고독은 현재까지는 해결할 수 없다. 사후 세계를 발견하거나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인간도 이를 해결할 수는 없다. 수천의 궁녀를 순장한다고 해도 결국은 혼자 죽기 때문이다.
나는 궁극적으로 죽음을 피하고 싶고 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에 다다르기까지는 고독을 피해야 한다. 이를 피하는 첫 번째 방법은 삶에 매진하는 것이다. 매일매일을 바쁘게, 정신없게 살면 사실 그다지 괴롭진 않다. 삶에 신경쓸 것이 너무 많은데 죽음이 생각이 날 턱 없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일시적이다. 바쁨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고독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고독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 원인을 찾고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채용하고 있다. 죽음을 해결하기 위한 로드맵을 머릿속에 그리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 고상한 마지막 방법은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모든 것을 관조하는 것이다. 일종의 도교적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강이 흐른다면 강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고 그저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끔 이런 일체화의 순간이 올 때에 굉장히 큰 정신적 충만감을 느낀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외로움 때문이었는데 쓰다보니 외로움이 날아가버려서 영감이라든지 글을 쓸 의욕이라든지가 다 사라져버렸다. 뭔가 글을 애매하게 마치는 것 같지만 오늘의 글은 여기까지 쓰겠다.
마지막에 의욕이 사라져 급히 마무리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양질의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