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날때 마다쓰는 육아일기] 아이를 낳고 직장을 관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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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yealumilu@yealumilu입니다.^^

원래는 셀프인테리어 글 위주로 포스팅을 많이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육아 전문이 되어가네요

평상시라면 늘 뭔가를 뜯어고치거나 손노락질을 하고있을텐데
아무래도 만삭이라 체력이 안되기도하고
현재 관심은 오로지 2주뒤에 태어날 둘째와
우리 첫째가 어떻게 하면 둘째를 잘 받아들일수 있을까 란 생각만 들어서요.

지금 저에겐 미래의 꿈보다는 당장 우리 아이들이 먼저이네요 ㅎㅎ
그래도!! 저만 열심히 쓰고있지만 #kr-interior 태그도 많이 응원해주세요/ㅅ/


오늘 우연히 유투브에서 뮤직비디오 하나를 보았답니다.

"2017 월간 윤종신 3월호 - 마지막 순간" 이라는 곡입니다.
조금 지난 동영상이라 식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전 그냥 무심코 보고 있다 눈물이 났답니다.

뮤직비디오는 한 평범한 여자의 인생이 그려집니다.
누군가가 잃는 내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행복한모습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게 캠퍼스커플로 지내다 같이 졸업을하여
결혼을 하고 신혼을 즐기다 아이를 낳고 직장을 관두고
주부로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들을 학교에 보내며 아들이 결혼을하고 손주를 낳는 세월을 그립니다.

그렇지만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도 생각나고 지금의 나의 모습도 비춰졌던것 같습니다.

내 나이 34살.. 저희 시대때는 핵가족화되고 남녀차별이 거의 없어져서
아들이나 딸이나 똑같이 교육을 시키며 사회진출을 하는 시대가 되었답니다.

저 역시 여러가지 진로 고민을 하다가 "조경학과"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
졸업후 사회에 입문 하였지요.

지금 취직이 너무 어려워 감히 힘들었다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좋은 학력을 갖지 못하고 기사자격증도 뒤늦게 취득 했기에

월급을 안주는 회사에도 다녀보고,4급사원(비정규직)으로 지내기도하는등
다사다난 하게 사회에 입문 했답니다.

저희 계열에서 저희동기들 취직을"막차탔다"라는 말을 쓴답니다.
거의 입사와 동시에 건설위기가 찾아왔고 제가 입사하고 6년동안 새로운 신입이 안들어왔거든요 ㅎㅎ
저보다 조금 늦게 졸업한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친구는 3년만에 일반 중소 건설업에 입사를 할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보니 저는 6년동안 있어서는 안되는 어의 없는 사건을 겪기도 하고
말도안되는 업무량을 하기도하고, 회사 수익이 마이너스가 되자 다른 회사로 합병되는등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도
사표 한번 던질 생각을 못하였답니다.
회사 밖은 더 치열하니까요.

그러다가 남편인 루나군을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처음으로 아이를 갖은걸 알게 되고 연말이라 회식을 하게되어 처음 공개를 했을때
가족같은 단란한 회사였기에 모두의 축하를 받아 기쁨을 누리는것도 잠시

그 다음주 상사에게 출산후 어떻게 할지 빨리 결정을 달라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이런말을 하게되서 곤욕스럽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음이 느껴졌지요.

우리나라는 법으로 출산 전후 3개월 "출산휴직"을
그이후 1년간 "육아휴직"을 받을수 있는데

회사 지침상 3개월 "출산휴직"을 다녀오는건 기다려줄수 있지만
"육아휴직"을 신청하게되면 사실상 관두는걸로 생각하겠다.
라는 말을 듣게됩니다.
6년간 막내로 월급동결을 겪으면서도 버틴대가 이죠.

결혼한지 얼마안되서 집을 낀대출금과 갑자기 줄어드는 소득을 생각하여
3개월간 출산휴가를 얻고 복귀할가 생각도 했지만

저는 그다지 상황이 좋지 못했어요.
당시 회사 직원 여럿이 관두고 국세청 감사를 받게되면서 임신중임에도 지나친 야근과 업무량
스트래스로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졌었거든요.

임신초기에 대상포진이 걸려서 진통제도 못쓰면서 버티기도하고
다태아로 임신을 했다가 한 아이를 유산 시키기도하고
신경관 결손 고위험군으로 검사결과가 나와 이것저것 기형아 검사를 하기도 하고
마지막엔 임신성고혈압(임신중독)으로 혈압이 160대로 치솟고 몸이 30kg이 늘어날정도로 붓고
눈이 흐려지는등의 증상을 겪어 병원에 입원했다가
태반 조기박리로 하혈 및 긴급응급수술~ 32주 만에 1.5kg의 첫째아이를 낳게 되었거든요.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돈이 문제가 아니다
몸부터 추스려라 라고하며 다시 복직하는걸 포기 하였답니다.

저는 저의 건강상문제로 복직을 포기하였지만
당시 회사를 다닐때 다른 여자직원이 복직후 먼곳으로 발령나거나
프린터실 옆에 자리를 내주는걸 보았기에 문제가 없었다고해도 다닐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ㅎㅎ

출산율 최악인 이 시대!

'가임기여성지도'?? 정부 예산으로 출산율을 증가를 위해 이런 미친짓을 하기전에

왜?? 이런상황이됬는지? 엄마가 되기위해 사회에서 어떤 차별을 견뎌야하는지?
실질적으로 법이 어떻게,얼마나 안지켜지는지를 분석& 조사하는게 먼저 아닐까 합니다.

아앗.. 그냥 생각을 늘여놓은 소소한 일기같은 글을 적으려고 했는데
회사 얘기를 하면 흥분을..ㅎㅎ

출산후 약 2주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한후 조금 나아진 몸을 이끌고
매일 보아온 익숙한 길을 다시 걸어갔습니다.
익숙한 버스 익숙한 전철 익숙했던 거리
출근길에 즐겨먹었던 빵집, 오랜만이라고 아기 잘 낳았냐고 반겨주는 경비 아저씨

그렇게 사무실에 도착하여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라고 인사하자.
업체와 전화통화를 하는 과장님, 결제를 하고 있던 이사님,
입찰로 정신이 없던 저의 후임등 모든 직원들이 동시에 저를 쳐다봅니다.

괜찮냐?,몸부은게 많이 가라앉았다. 아기는 잘크냐?
여기서 이러지말고 밑에 카페에가자
그 동안 걱정과 반가움 저의 몸 상태에 대한 안도감등 이 몰려왔습니다.

이리저리 인사를 드리고 인사과에 올라가 이것저것 서류를 작성하고
조용히 제가 6년간 앉아있었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입원을 했던터라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았거든요.

입사때부터 차곡차곡 정리했던 업무 메뉴얼 노트,
내 이름이 박힌 명함, 관련 전공 서적들, 이것저것 추억이되는 회사생활이 담긴 사진들
A4용지 박스 하나를 들고와서 차곡 차곡 넣어봅니다.
이것저것 넣다 뺐다를 반복하다보면 생각보다 얼마 안되는 짐들입니다.

그 동안 참 소중하게 보관하고 나의 젊음 열정이 담긴것들인데....

이제 그 박스는 한동안 그저 사회인이였던 미루를 추억할 수 있는
추억이 담긴 박스가 되겠지요.

학창시절은 대학을 잘가기위해, 대학은 취직을 잘하기위해
우리의 부모님들은 아이를 한명의 사회인을 만들기위해 어마어마한 교육비용을 지불하지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딸로 태어나면 교육의 기회를 많이 잃었기에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라는 말로 딸에게도 엄청남 교육열을 쏟아 붙지요.
그렇게 많은 투자와 부모님의 피땀으로 한명의 아이가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돈을벌게 되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진급의 기회를 많이 잃게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직장을 잃게되는 구조가 되어있지요
물론 우리부모님이 투자금을 회수하기위해 아이를 낳고 교육을 한건 아니지만요 ㅎㅎ~

저는 성격이 가정주부 스타일은 아니여서
아이가 어느정도 크게되면 어떤 일을 벌일지, 다시 어딘가에 취직을할지,아니면 그냥 평범한 주부가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떻게 하던 아이를 낳기 전과는 훨씬 더 노력해야하고
이전보다는 대우를 못받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겠지요.

언제나 쓰는 말이지만 아이를 낳은것을 단 한번도 후회한적 없습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제가 사회생활을 하며 얻는 열정, 성취감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 했으니까요.

하지만 집창고에 구성에 놓여있는 그 박스를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지금의 내자신이 없이 엄마라는 이름만 남은 초라한 모습을 비난하기도하고
점점 내가 다시 사회로 나갈수 있을까? 라는 자신없는 내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는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은 이런 고민이 없는 세상이였으면
노력하면 당당히 엄마로도, 사회인으로도 성장하고 성공할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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