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9.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다.

yangmok7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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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는 나치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리게 된다.
그는 2차대전 당시에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서 집단수용소로
실어나르던 수송부의 총책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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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과거 때문에, 아이히만에 대한 평가는 누가보아도
당연히 유대인 대학살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자일 수밖에 없었다.
재판정에 아이히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는 괴물같거나 악마처럼 괴이하고 흉칙할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재판정에 등장한 아이히만의 모습은 아주 평범한
인상이었고, 매일 마주치면서 인사 나눌 수 있는 같은 동네 이웃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아이히만은 재판장에서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너무나 당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은 법을 지키는 시민이고, 국가 명령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 뿐이었다고 항변했다.

아이히만의 자기변명에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 나는 국가에서 요구하는 대로, 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공적인 일을
하였던 것 뿐입니다.
그 당시 나의 임무는 유대인을 수용소로 실어나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나에게 부여한 공적인 임무에 최선을 다 했던 것 뿐입니다.
그렇기에 죄가 있다면, 국가의 공적인 임무를 부여했던 명령권자에게 있는
것이며, 사실상 나는 국가에서 요구하는 대로, 나의 상관이 명령하는 대로
그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 복종의 미덕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던 아이히만이 재판정의 사람들을 훑어보면서
보내는 눈길은, 마치 다음과 같은 질문을 사람들에게 역으로 던지는
것 같았다.

“너희가 내 자리에 있었으면
달랐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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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이히만의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공감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아이히만의 위와 같은 질문에 분명하게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쩌면 당신 역시 아이히만 처럼 비슷한 과거의
행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 참석했던 <뉴요커>의 기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는데,
그 책에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괴물도 악당도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아이히만은 우리 주위에 너무나 흔한 개인의 영달을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아이히만의 죄는 유대인을 수용소로 운반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진짜 죄는 무사유(無思惟),생각하지 않음이라고 말했다.
아이히만은 국가라는 조직에 충실히 복종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게 될지 사유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히만의 죄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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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나 아렌트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한 마디를 던졌다.

“악은 평범하다”

한나 아렌트의 이 말은 사실 아주 불편한 이야기다.
우린 너무 쉽게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지만,
악인들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실로부터의 거리감, 무사유(無思惟)가 아마도 인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예루살렘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아직도 한나 아렌트의 말이 불편하게 다가온다면 이 말을 다시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당신은 아이히만과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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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대한민국과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펴보자.
아이히만의 경우와 같은, 평범함 악인의 경우를 수 없이 많이
목격하게 된다. 특히 정치인 공무원 군인 등에서,
그리고 대기업 또는 유명인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행위가 사회의 지탄을 받으면서 들통나게 되면,
그들의 한결같은 변명은 거의 동일하다.
"하는 일이 그것이었기 때문에"
"하기 싫어도 조직체계가 그러하기 때문에"
"국가에 충성하고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서 명령에 따랐던 것 뿐이다"

탄핵으로 쫓겨난 푸른지붕 큰기와집의 전 여자대통령때만 해도,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비탄 속에 빠트리는
지를 뻔히 알면서도, 푸른지붕 큰 기와집에서 하달되는 명령대로만
움직였으니까 그들은 죄가 없는 것일까?

만약 그들을 붙잡아서, 그들의 책임소지를 캐묻는다면,
그들 역시 아이히만과 비슷한 논리를 주장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국가 공무원인데, 주어진 임무메뉴얼대로만
이행했을 뿐입니다"
"공직에 있으면서 일단은 내가 먹고 살아야만 하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과거에 한국 사회에서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아이히만과 같은 경우를 들춰내본다면,
어마어마한 숫자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또 한번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들 역시 괴물같고 흉칙하게 생기고
사회부적응자 같은 정신질환자들이 아닌 아주 평범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서 말이다.

싸이코패스 소시오페스라는 정신질환자의 경우로 몰고 가고 싶겠지만,
아이히만이 싸이코패스였거나 소시오페스였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만약, 그들의 정신세계가 악마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의 정치계와 공무원 사회는 그야말로 정신질환자들만 모두
모여있는 몰락하기 일보 직전의 국가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과연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수많은 아이히만들을 누가 다 만들어내었나?
결국은 국민들 스스로가 이렇게 만들어 내었던 것 아닌가?

국가지도자 그룹과 고위급 인사들, 그리고 국가의 최고 엘리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죄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아이히만들로만 채워져있다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서 치켜세운 국민들 역시,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적나라하지만, 불편한 과거의 진실 하나를 콕 짚어서 꺼내어 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나고 대선을 치룰 때에, 이명박 대통령을 너도나도
좋다고 하면서 표를 주었던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국민들 당신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당시에 이명박이 등장하면서 국민들에게 어떤 선전빨 포장빨로
현혹을 시켰는지를 잘 생각해보라.
경제 살리기, 오로지 경제 살리기 였다. 취업난 소득감소 물가상승, 등등
돈과 관련된 정책을 쏟아내면서,
국민들에게 " 모두가 돈을 잘 벌게 만들어주겠다" 는 경제살리기의
청사진을 내세웠다.

그 청사진이 국민들에게 정말 잘도 먹혀들었다.
왜 그렇게도 잘도 먹혀들었을까?
대다수 국민들의 의식수준에서는
"경제가 좋아진다 = 내가 돈을 많이 번다" 라는 공식만이
성립되어져 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경제가 좋아진다'라는 의미는 여러 복잡한 사회적 심리적 대중적 외부적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따져보았을 때에 평가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사고능력을 가지지 못한,
한 마디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
국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던가?

사유하는 능력,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 국민들의 평균적인 의식수준에
딱 맞추어서 그 시대적 상황 그 사회적 분위기에 맞추어서 그만한
대통령이 등장했던 것이니까, 이제와서 누구를 원망하랴?
그리고 그 결과가 과거 군사정부 독재자의 딸이, 과거 아버지의 영광을
다시 되찾아보고자 푸른지붕 큰 기와집에 입성하여,
이 나라를 너도나도 결혼하기 싫고, 일자리도 없고
외국으로 나가고만 싶은 나라로 만들어놓았다.

더 기가 찰 노릇은,
이 사회의 병폐를 고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사유하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깨어나는 것이고, 더 많아지는 것인데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인문학 철학
사회과학등을 실용성이 부족하고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학문적으로
등한시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더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공동체의 부조리함과 모순점 비합리성을 비평하고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설득력있게 제시해낼 수 있는 능력을
사유하는 능력,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장 먹고 살기 힘드니까, 실용적인 가치가 없어서,
철학 사상 인문학 고전 사회학 등은 별로 쓸모가 없다?
그 결과는 우리들이 더욱 더 하루세끼 밥 먹고 살기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닥쳐오면서 그 업보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