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일상생활의 매 순간순간 마다가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의 연속일수도 있다.
오로지 선택과 결정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존재의 가치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러한 선택의 과정마다에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고 있을 것도 같은 생각이 든다.
매 순간의 선택들 중에서도 가장 선택의 갈등이 클 수 있는 문제일 경우에는 여러가지 선택조건들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고민을 하게되는데, 이것이 경제학적으로는 '기회비용' 이라는 개념으로 정리가 되어진다.
그러나 실제의 일상생활 속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치밀한 계산을 통해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내키는 대로 즉흥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일명 "기분내키는 대로", "혹은 꼴리는대로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것은 당연히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계산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선택의 방식이다. 실제로 한달에 200만원 버는 여자가 300만원 짜리 명품가방에 욕심이 나서 사버리게 되면, 이것은 말 그대로 꼴리는 대로 소비선택을 하는 것이지 절대 합리적인 경우의 선택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가만히 잘 생각해볼 문제이다. 선택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만 할 것인지 아니면 기분내키는 대로 즉흥적으로만 할 것인지, 감각적 선택과 이성적 선택의 딜레마에 놓여져 있는 것인데, 어느 쪽으로 선택을 하든지 결국은 인간이 원하는 것은 더 좋은 행복감을 추구하려는 것일테니까.
지성적 아름다움을 강렬하게 추구하는 사람이 주머니에 있는 돈 1만원으로 배가 고파도 밥을 굶고서 읽어싶었던 책을 사게 되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이라는 것과, 맛있는 것만을 탐닉하는 미식가가 1만원으로 먹고싶은 것을 사먹을 수 있을 때의 행복감이라는 것은 그 방향은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각자가 누리게 되는 행복의 정도는 결과적으로 마찬가지 일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가 느끼는 유혹의 정도도 다르고 그 내용도 다르다. 이 유혹이 앞에 다가왔을 때에 어떤 것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가 항상 선택과 결정의 문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 프랑스 화가인 '조르주 로슈그로스'의 '꽃밭의 기사' 라는 그림이다. 벌거벗은 꽃의 요정들에 둘러쌓인 기사가 멍 때리듯이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유혹에 맞서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속의 기사는 꽃의 요정을 끌어안았을 때에 나타날 결과와 이 유혹을 참고 그냥 넘어갔을 때의 결과에 대해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기회비용적인 측면으로 갈등을 하고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와는 다르게 과거시대의 고전적인 가치관에 있어서는 유혹이 앞에 오더라도 이것을 참으면서 갈등을 하지만 끝내는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기절제의 능력을 미덕이라고 배워었고 또한 그렇게 가르침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이 가장 이성적이라고 했었다.
인간에게는 유혹의 딜레마를 겪으면서 갈등을 하게 된다는 것이 가장 원초적인 속성일 수도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서 자유를 얻게 되지만 대신에 농사를 지어서 먹을 것을 직접 구해야 하는 노동과 출산을 해야하는 고통을 안게 되었듯이, 유혹의 선택을 함으로써 자유를 얻는 대신에 고통을 가지게 되는 기회비용의 측면을 따진다면, 차라리 아담과 이브는 기회비용을 따지지 말고서 에덴동산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어쩌면 인간에게는 매순간순간마다의 자유로운 선택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유발시키는 것에는 유혹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었고, 결국에는 그 유혹에 마음이 흔들려서 끌려갔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만 하는 딜레마적인 상황에 놓여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당연히 여기에는 기회비용적인 측면에서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즉흥적인 기분으로 꼴리는 대로 선택을 하게 되겠지만 말이다.